후치다 미쓰오(1902∼1976)는 일본 군국주의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할 때 해군 비행총대장(중좌)이었다. 저자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까지 총대장의 역할과 준비, 전략과 전술의 세부 사항에서부터 전쟁의 주요 전황 등을 종합적인 관점으로 자세히 기록했다. 원자폭탄이 작열한 직후 그곳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 핵전쟁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끈다는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자서전을 남겼다.
책에는 저자의 유년 시절을 비롯해 해군대장이 된 경위,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중상을 입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 전쟁의 패배 원인 파악, 히로시마 원폭 직후 상황, 도쿄 재판에서의 증언을 포함해 역사적인 장면에 대한 기록 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저자는 1941년 진주만 공격의 개전 벽두를 간결한 문체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오아후 평원을 통해서 진주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장님, 진주만이 보입니다.”
마쓰사키 대위가 숨을 헐떡이며 보고했다.
“그래 보인다. 마쓰사키 대위, 항로를 남쪽으로 돌려 바바스로 가라.”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난 후 나는 쌍안경으로 진주만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있다. 있다. 삼각 돛대, 상자 돛대의 전함들이 있다. 나는 하나, 둘, 셋… 눈으로 쫒고 가슴으로 세었다. 예상대로 전함 8척 전부가 정박하고 있었다. 나는 찡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잘 있어주어 고마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8시(현지시간) 12분 전이다. 여기서 폭격을 명하면 제 1탄은 오전 8시에 맞춰 투하된다. 진주만 공격은 오전 8시를 기해서 행할 예정이었다. 나는 통신사인 미즈기 병조장을 돌아보았다.
“미즈기 병조장, 전 비행기 앞으로 발진, 전군 돌격하라!”
미즈기 병조장은 전신 키를 쳤다. 간단한 약어인 ‘도 도 도’의 연속이었다.
“대장님, 돌격의 발신, 송신을 끝냈습니다.”
“옳지, 잘됐어.”
때는 12월 7일 오전 7시 49분이었다. 개전 오전 8시 11분 전이다. 도쿄 시각으로는 12월 8일 오전 3시 19분. 이 시각을 경계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저주받은 태평양 전쟁이 개막됐다.
자서전은 200자 원고지에 손으로 쓴 펜글씨로 2000장이 훨씬 넘는다. 개성적인 글씨체로 ‘자서전-여름은 가깝다’는 제목이 붙어있다. ‘여름이 가깝다’는 말은 성경에 기록된 세계 종말의 증조를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인용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 제국주의가 인류에게 아픔을 준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성하며, 전쟁이 끝난 후 기독교로 회심했다. 이 후 저자는 일본에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진주만은 더 이상 없다(No More Pearl Harbour)’를 전 세계에 외치며 100회 이상 전도여행을 다녔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물론, 일본의 진주만 기습 작전 내용이 자세하고도 조리 있게 정리된 이 책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역사서로, 전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전쟁서로, 군대에 관심 있는 사람은 군의 명예와 복종에 관한 글로, 기독교에 관심 있는 사람은 사랑과 용서로,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급박한 당시의 상황을 확인하며, 한 인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2005년에 NHK 위성방송으로 TV영상으로 제작됐다. 이어 2007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자 당시 일본에서는 TV 방영과 더불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다수가 됐다. 특히 일본 인구의 80%에 가까운 1억명의 국민이 전쟁을 모른다. 침략전쟁으로 아시아의 여러 사람들에 적지 않은 고통을 끼친 일본은 지난 전쟁을 반성하고, 철저히 평화를 지킬 것을 맹세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평화헌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전후 세대의 정치가들에 의해 왜곡돼 국론이 몹시 흔들리고 있는 상태다.
저자는 당뇨합병증으로 사투를 벌이면서 ‘일본이 두 번 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 수기를 남기고 76세에 기구한 생을 마감했다. 우경화에 빠져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독후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책과 영성] “일본은 또 전쟁하면 안된다”… 아베에 경고
입력 2015-04-25 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