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광재(50) 전 강원도지사에게 벌금형이 확정됐다. 정관계 인사들에게 광범위한 금품 로비를 벌였던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이 공여자라는 점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닮았다. 공여자와 목격자의 진술이 확보됐지만 법원은 진술 신빙성을 엄격하게 판단했다. 결국 이 전 지사 혐의 중 한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가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공여자(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가 숨진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쉽지 않은 수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3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지사에게 벌금 500만원과 추징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전 지사의 혐의는 세 가지였다. 유 회장으로부터 2009년 10∼11월과 2010년 6월, 2011년 2∼3월에 1000만원씩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중 2010년 6월의 1000만원만 유죄로 판단했다. 다른 두 가지 혐의와 달리 유 회장과 목격자의 매우 구체적인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 회장은 “당시 식대가 너무 비싸다고 카운터에 있는 아가씨에게 얘기했고, 그 아가씨는 강원도 동해 출신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이 식당 사장을 법정에 불러 “카운터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강원도 출신 여직원이 한 명 있다”는 확인까지 받았다.
자리에 동석했던 로비스트 박영헌씨는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세세하게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유 회장의 지시로 돈을 마련한 장모씨는 회사 내부용 지급증을 작성하면서 ‘이광’이라고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약어를 적어 넣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성 전 회장 측근들의 ‘입’을 주시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이 숨진 상황에서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해줄 ‘귀인’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여기에다 정황을 뒷받침할 물적 증거 확보도 필수다. 이 전 지사 사건에서는 당일 식대를 결제한 유 회장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 장씨가 그동안 작성했던 지급증 일부가 증거로 제출됐다. 증언과 물증이라는 두 가지 요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다만 돈을 건넨 시기조차 특정할 수 없었던 나머지 두 혐의는 모두 무죄로 선고됐다.
특별수사팀은 현재 성 전 회장과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지사의 동선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상태다. 남은 과제는 관련자들로부터 얼마나 구체적인 진술을 얻어내고, 추가 물증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이 때문에 특별수사팀은 관련 증거를 인멸하고 검찰 조사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준호(49) 전 경남기업 상무를 긴급체포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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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4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