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사진) 법무부 장관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7년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에 로비한 내역 전반을 다 살펴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개혁 차원에서 모든 걸 밝혀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수사가 "불법 정치자금 관행을 근절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황 장관은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수사가 (금품 메모에 등장하는) 8명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황 장관은 "메모를 보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7년에 걸쳐 여러 분들에게 얼마씩 준 것처럼 돼 있다"며 "메모에 정치자금 문제가 전반적으로 거론된 거니까 다 살펴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금품 메모에 현 정부 유력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수사하다 보면 다른 정·관계 인사들 연루 가능성도 조사하게 될 것이란 의미다.
그는 "자료를 모으고 압수수색도 하다 보면 그 7년간 8명 외에 여러 사람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며 "8명만 불러 조사하고 말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이 정치권에 아주 폭넓게 로비를 했다는 말도 들리지 않느냐"고도 했다. 이어 "정말 (수사가) 소속이나 지위고하에 구애돼서는 안 된다"며 "검사들에게 흔들림 없이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철저하게 원칙대로 해나가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성 전 회장이 2005년 5월과 2007년 12월 두 번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은 것과 관련해 "단기간에 연달아 사면이 이뤄진다는 게 통상 있는 일은 아니다"며 "현 단계에서 수사 대상인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프로세스(절차)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검사 논의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논의해 결정할 일"이라며 "다만 정치적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검찰에서 사명감을 갖고 수사에 진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황 장관은 또 경남기업 포스코 동국제강 등 동시다발적인 대기업 수사와 관련해 "극소수 비리 기업을 법으로 처리해 건전한 대다수 기업이 법적 안정성을 믿고 투자하는 선순환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해 물을 때마다 황교안(58) 법무부 장관은 '수사란 이런 것이다'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수사는 어떤 목표에 따라 진행하는 게 아니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는 게 요지였다. 22일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 적힌 8명으로 제한해 수사한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거냐"고 되물었다. 수사 과정에서 포착되는 불법 정치자금 전반을 살펴보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다. "비리수사는 늘 성공과 실패가 있지만 성역은 없다"고도 했다. 황 장관은 재임 2년을 넘긴 현 정부 최장수 장관 중 한 명이다. '마을변호사' '법률홈닥터' 등 서민들이 겪는 법의 장벽을 낮추는 정책에 큰 애착을 보였다.
지호일 박세환 기자 blue51@kmib.co.kr
“수사 범위,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
-최근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는데.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를 보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7년에 걸쳐 여러 분들에게 얼마씩 준 것처럼 적혀 있다. 수사를 하다보면 이름이 나와 있는 분들은 다 부인할 것이다. 그럼 계좌추적이나 통화내역 추적 등을 해야 할 텐데, 거기에 8명만 이름이 나오겠나. 7년간을 죽 살펴보는데 우리가 스킵(건너뛰기)해 가면서 볼 수 있겠나.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분(성 전 회장)이 정치권에 아주 폭넓게 로비를 했다고 하지 않나. 어차피 메모에 기록된 분들에 대해 확인하려고 하면 다른 여러 사람들이 다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8명만 불러서 조사하고 말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8명만 조사하는 게 정의로운가. 한 명에게만 딱 (전달)했다고 하면 그 시점 전후만 보면 되겠지만 7년에 걸쳐 나눠서 준 걸로 돼 있으니 수사를 하다보면 저절로 여러 분을 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리수사에는 성역이 없다. 소속이나 지위 고하에 구애돼서는 안 되고, 또 사건 자체도 (정치자금 전반을) 수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정치자금 수사가 있었지만 그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수사가 불법 정치자금 관행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국민도 그것을 바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다 보면 수사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질 수 있지 않겠나. 그러나 이것도 가능성이다.”
-수사가 결국 대선자금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수사는 어떤 목표를 갖고 진행되는 게 아니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증거가 있어야 하고, 또 증거를 토대로 법률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말씀하시는 부분과 검찰 수사는 조금 출발점도 다르고 관점도 다르다.”
-단서가 많지 않아 메모의 8명 수사도 간단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러 수사 범위를 넓히려 하는 건 아니고 하다보면 저절로 8명에 국한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압수수색을 한다고 해도 자료가 다 섞여 있지 않나. 먼저 8명 자료만 골라서 하고, 나중에 나머지 300명 것을 하고 이런 거는 아니지 않나(웃음).”
-부패척결을 선언한 국무총리가 그 수사 대상이 돼 버렸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보나.
“어려울수록 정도를 가면 된다. 어렵다고 해서 여러 가지 고민하게 되면 그게 악수(惡手)가 되는 거다.”
-현 정부 유력인사들이 수사 대상이라 외압과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누가 검찰에 외압을 넣겠나. 넣는다면 내가 넣어야 하지 않나. 내가 그럴 것 같이 보이나(웃음). 2015년 대한민국은 그런 구조로 돼 있지 않다. 장관으로서 여러 가지 의견을 외부에서 들으면 ‘이런 걱정이 있다’고 전하기도 하지만, 특정 사건을 왜곡하는 압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당 정치인으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기계적 균형 맞추기’라 반발이 나올 텐데.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만들지 않았나. 내 기억으로는 검찰 역사상 10번이 안 된다. 검찰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검사들에게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원칙대로 해 나가자는 취지를 전하고 있다.”
-세간에서 말하는 ‘비밀장부’가 나온다 해도 바로 혐의가 입증되는 건 아닌데, 이번 수사의 성패는 어디에 달렸다고 보나.
“매우 어려운 수사다. 하지만 그동안 검찰이 어려운 여건에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 사례가 많이 있고, 역량과 노하우를 갖춘 조직이라 잘 극복하리라 본다.”
“성완종 사면, 확인 절차 필요”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특별사면이 ‘이례적’이라고 했는데.
“단기간에 연달아(2005·2007년) 사면이 이뤄진다는 것이 통상 있는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게 지금 단계에서는 수사 대상이 되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이 부분에 관해 알아볼 수 있는 프로세스(절차)가 있을 거다. 수사 측면이 아니라 그런 프로세스를 거쳐 봐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확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섣부른 얘기를 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이 사건이 상설특검 1호 대상이 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예전에는 특검을 하려면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해서 지난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특검법이 만들어져 있다. 정치권에서 논의해 결정할 수 있을 거다. 다만 그런 정치적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검찰이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진력할 것으로 본다.”(황 장관 인터뷰 후인 23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상설특검이 아닌 별도의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최근의 여러 수사가 지난 정권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는데.
“수사를 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내가 경남기업을 수사하고 싶다고 해서 ‘너, 나와!’ 하면 수사가 되는 건가(웃음). 여러 경로를 통해 문제가 있는 기업을 찾고, 증거 확보 노력을 해서 증거가 잡히면 수사에 들어간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런 비리에 대한 정보는 시간이 흘러야 나온다. 서로 간에 이해 충돌도 생기고 사업도 안 되고 해야 소위 ‘찌르기’가 생기는 거다. 몇 년 전 비리가 흘러나오다 보니 저절로 전 정부 것이 많이 문제가 되고, 현 정부 것은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정부나 다음 정부에서 문제가 되고 하는 것 아니겠나.”
“불법시위자, 끝까지 추적해 처벌”
-4월 25일이 ‘제52회 법의 날’이다. 장관께서도 법질서 확립을 줄곧 강조해 왔는데.
“법의 날은 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1964년 만들어졌다. 법은 엄한 처벌이 아니라 필요성 측면에서 인식해야 한다. 국민이 행복해지도록 하는 기반이 법이다. 국가경제 규모 등에 비하면 우리 법질서 준수 수준은 낮게 평가되고 있다.”
-최근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태극기를 불태우는 상황도 발생했다.
“현 정부 들어 집단행동이나 불법 시위에 일관되게 대처하고 있다. 그 원칙은 ‘적법보장, 불법필벌’이라 할 수 있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은 ‘모두’ 조치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끝까지 수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불법·폭력시위는 현저하게 줄어 0.3%까지 내려갔는데, ‘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장관 취임 이후 마을변호사, 법률홈닥터, 범죄피해자보호·지원제 등 ‘따뜻한 법치’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그 이유와 성과는.
“검찰은 인권을 지키는 기관이다. 마을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가 법률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의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모든 서민이 쉽게 변호사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보자는 거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재능 기부할 변호사들을 모집했고, 현재 1412개 읍·면에 1481명의 변호사가 지원해 빠지는 마을 없이 배치됐다.”
-취임 후 2년이 지났다. 그간의 소회와 향후 역점 분야 등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이 헌법의 핵심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심판 청구와 불법시위 대처 등이 대표적이다. 마을변호사 같은 법의 장벽을 낮추는 일은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다. 검사들이 특정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는 ‘검사 전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 싶다.”
wjtae@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황교안 법무부 장관] “비리수사에 성공과 실패는 있어도 성역은 없다”
입력 2015-04-24 02:41 수정 2015-04-24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