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시트콤을 안 보면 점심시간 대화에 끼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기 배우와 개그맨이 총출동하고 유행어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죠. 1995년부터 2005년 방영됐던 ‘LA아리랑’ ‘남자 셋 여자 셋’ ‘순풍산부인과’ ‘세 친구’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논스톱’은 아직도 전설로 회자됩니다.
요즘 방송에선 시트콤 씨가 말랐습니다. 2010년 3월 종영한 ‘지붕 뚫고 하이킥’ 이후 몇몇 작품이 고전하다 말았습니다. 방송국도 시청자도 기대를 저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시트콤이 최근 드라마에서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과거 드라마에서도 웃기는 장면이 양념처럼 등장했지만 요즘에는 아예 웃기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반(半)시트콤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월·화 드라마의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는 SBS ‘풍문으로 들었소’(풍문)는 웃겨서 인기입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배를 잡고 웃었다”는 후기가 많습니다. 분위기를 잡고 몰입하려는 순간 시청자를 빵 터트립니다.
극 중반을 넘은 풍문에서 개그 장면을 찾기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잠자리를 요구하는 남편에게 박치기하고 나란히 누워 냉찜질하는 상황(사진 위), 탈모를 고민하는 남편의 머리채를 잡고 협상하는 모습은 시트콤의 한 장면입니다. 매운 국수를 처음 먹은 재벌이 119를 부르라고 호통 치거나 부잣집에 시집간 딸의 집에 놀러 간 친정 아빠가 집 안에서 길을 잃는 장면도 폭소를 자아냅니다.
지난 18일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이혼변호사는 연애 중’(이혼변호사)도 시트콤 같습니다. 과장된 코믹 연기와 황당한 상황 설정이 극 전체를 이끕니다. 옷걸이를 건 채 재킷을 입은 여주인공을 옷걸이째 들어 올리거나(아래) 동료를 골려주려고 사무실 문패를 ‘변소’로 바꿔놓는 광경은 코믹물이나 다름없습니다.
3회 방송을 앞둔 케이블 tvN의 드라마 ‘초인시대’(초인)는 개그맨보다 웃긴 작가 유병재가 주인공입니다. 25년 동안 동정을 지켜 초능력이 생긴 얼토당토않은 소재부터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런 웃음 뒤에는 씁쓸한 현실이 깔려 있습니다. 풍문에는 상류사회의 ‘갑질’이 나옵니다. 이혼변호사는 높은 이혼율을 투영하고요. 초인은 청년실업을 꼬집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사회문제를 건드려도 슬프지는 않습니다. ‘피식’ 할 수밖에 없는 황당한 웃음을 주고 말죠.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한번 크게 웃기라도 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친절한 쿡기자] 시트콤 빈자리 ‘시트콤 닮은’ 드라마들… 풍자 속 ‘웃음 코드’로 부담 덜어내
입력 2015-04-24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