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드라마 ‘징비록’을 볼 때마다 과거의 뼈아픈 실패를 거울삼아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 공직자의 자세가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재상으로 몸소 겪은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을 ‘징비록’으로 남긴 서애 류성룡은 “시경(詩經)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徵)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毖)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고 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징비록을 신속하게 입수해 발간하고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긴 이순신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한다.
징비록에는 잘한 일에 대한 기록도 있다. 류성룡이 이순신을 천거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읍현감에 불과했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발탁하게 한 그의 용인술은 전란에 휩싸인 조선을 구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갑작스러운 승진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류성룡은 이순신이 함경북도 경흥의 조산 만호로 있을 때 계략을 써서 오랑캐를 패퇴시킨 것을 눈여겨봤다.
온 국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보냈다. 그리움에 목매여 먼저 간 아이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부르는 가족들의 절규에 국민들도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죄 없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는지 진실을 밝히는 게 희생자와 그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텐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에 발목이 잡혀 있다.
과연 우리 정부는 ‘세월호 징비록’을 쓰려는 의지가 있는 것일까.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면서 국민들의 망각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임 있는 공무원이라면 류성룡처럼 스스로 ‘내 탓이오’를 외쳐야 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나같이 못난 사람이 국가의 중책을 맡아 위태로운 판국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잡지 못했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초야에서나마 못내 국가에 충성을 바치려는 나의 뜻을 내보이고, 또 못난 신하로서 나라를 위해 아무 공도 이루지 못한 나의 죄를 드러내려 한다”며 반성문을 써내려갔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안전처를 만들고, 재난안전 대응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널려 있다.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을 보자.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상왕십리역 지하철 열차 추돌사고, 제2롯데월드 균열·누수·진동·추락사고, 동작구 사당종합체육관 신축공사장 붕괴, 각종 도로함몰 사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취재 당시 한 전문가는 재난사고 대처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몸은 기억한 대로 움직인다”고. 인간은 사고를 당하게 되면 이성적으로 판단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몸에 익힌 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사고 예방 훈련이 중요하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이제 국민들이 스스로 안전을 생활화해야 한다.
최근 지하철 등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들이 시민들의 도움으로 심폐소생술을 통해 소중한 생명을 건지는 사례가 있었다. 서울시의 각 자치구에서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순신은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고 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안전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若無安全 是無國家).’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
[세상만사-김재중] ‘세월호 징비록’을 쓰라
입력 2015-04-24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