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회장님 집무실’ 오늘도 날다… 국내 5개 그룹 ‘전용기’의 세계

입력 2015-04-24 02:04



‘특정한 사람만이 이용하는 비행기.’ 전용기(專用機)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지난해 10월 국내 승용차 등록대수가 1564만대를 돌파하는 등 자가용 승용차는 이제 보편화된 추세죠. 차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아직은 범접하기 힘든 자가용 분야가 바로 전용기입니다.

하늘 위 움직이는 집무실

해외 출장이 많은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업무효율성 차원에서 전용기를 이용합니다. 특히 글로벌 사업장이 많은 대기업에 전용기는 총수들뿐만 아니라 고위 임원들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전용기는 항공사들이 운영하는 정기선이나 부정기선과 다르게 운항허가가 비교적 간단한 편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출발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입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23일 “전용기는 사치가 아니라 자산”이라며 “세계무대를 뛰어다녀야 하는 경영진에게 시간은 곧 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당 적게는 500억원에서 1000억원이 넘다보니 전용기를 운용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항공사를 제외하고 삼성·현대자동차·SK·LG·한화 5개 그룹 정도입니다. 삼성은 전용기를 3대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SK·LG·한화가 1대씩 운용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1991년 쌍용그룹의 김석원 당시 회장이 처음 전용기를 도입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캐나다산 챌린저 항공기를 도입했고, 이어 김우중 대우그룹 당시 회장이 같은 기종을 구매했습니다. 두 그룹은 공교롭게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당시 해체됐고, 전용기도 매각됐죠.

대기업 전용기의 좌석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객실과 집무실, 회의실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용기 내에서는 주로 업무보고를 받거나 회의를 갖고, 신문·책 등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기내 서비스는 일등석 수준으로 원하는 음식 메뉴를 미리 주문해 둘 수 있고, 취식 시간은 스케줄에 맞춰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침대와 샤워시설, 주방 등을 갖춘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 전용기라고 해서 항공기 안팎에 각 기업의 로고를 새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룹의 상징색에서 파생된 이미지를 꼬리날개와 동체에 삽입합니다. 삼성의 전용기에는 알파벳 ‘S’를 형상화한 푸른색 무늬가 있고, LG 전용기에는 붉은색과 회색의 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현대차의 전용기에는 진청색과 붉은색, 회색이 섞여 있고, SK·한화의 전용기도 각각 그룹 상징색인 붉은색과 주황색 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기업 전용기가 '작은' 이유

대기업 전용기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입니다. 국내에서 운항 중인 기업 전용기의 좌석 수는 보통 18∼20석 규모로 운용됩니다. 총수 본인과 주요 계열사 사장 등 극히 소수의 인원이 동승하기 때문에 항공기 운용과 유지비를 감안하면 더 큰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대통령 전용기의 규모 때문입니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전용기 기종은 B747-400입니다. 대통령의 해외 출장 시 비서진 등 청와대 관계자들과 각 부처 장관 등 최소 50여명이 탑승합니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전용기 내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업무보고를 받는 등 여러 활동을 하게 되죠.

대기업 총수의 영향력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대통령보다 강하게 보이는 것은 부담입니다. 이에 암묵적으로 대통령 전용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종을 타고 다닌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대통령보다 더 큰 비행기를 타고 다닐 경우 자칫 때 아닌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용기는 총수 전용 비행기?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용기를 주로 그룹 총수들이 이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총수 전용 비행기는 아니라는 것이 각 그룹의 전언입니다.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일반 직원들도 전용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운항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임원급 이상이 아닌 직원이 전용기를 타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전용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업들은 대한항공이 운영하고 있는 전용기 임대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기업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돈만 지불하면 전용기를 탈 수 있습니다. 다만 비용이 문제입니다. 김포에서 제주를 1박2일로 다녀오려면 수천만원을 내야 합니다. 김포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오려면 수억원이 듭니다. 또 항공사가 운영하는 임대 전용기는 해외 운항 시 영공통과 허가 등의 절차를 따로 밟아야 해서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미리 예약을 해야 탈 수 있습니다.



인기 있는 전용기 기종은

국내 대기업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종은 보잉이 제작한 B737-BBJ입니다. 삼성·현대차·한화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B737-BBJ는 보잉이 자사의 B737-700을 개조해 만든 기종으로 침실·VIP석으로 이뤄진 퍼스트존, 180도 완전 평면 침대형 좌석이 장착된 비즈니스존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순항속도는 시속 840㎞, 최대운항시간은 12시간이고 최대운항거리는 1만㎞ 안팎입니다. 탑승인원에 따라 28석까지 변경이 가능한 맞춤형 좌석 설계가 가능합니다. 동체길이 33.6m, 너비 5.23m, 날개길이 35.7m, 높이 12.5m입니다.

삼성은 지난해 5월 B737-BBJ를 개조한 모델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B737-BBJ는 운항거리가 1만㎞ 이하여서 서울에서 출발해 미국 동부 지역으로 갈 경우 중간 급유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새 전용기는 연료탱크를 추가 장착해 운항거리를 1만1482㎞까지 연장했습니다. 보잉은 B737-BBJ 이후 1999년 B737-800을 기본 모델로 하는 BBJ2, 2006년에는 737-900ER을 기본으로 하는 BBJ3 개발을 시작하는 등 전용기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국 걸프스트림이 제작한 G550은 SK와 LG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12인승 기종으로 ‘하늘을 나는 리무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릴 만큼 탑승감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합니다. 영국 롤스로이스가 제작한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최고운항속도는 시속 904㎞, 항속거리는 1만2500㎞로 BBJ보다 작지만 빠르고 멀리 날 수 있습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