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일곱,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왜 이 나이 때를 그렇게 부담스러워하는지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중학생과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만만치 않고, 몇 천만원씩 보증금을 올려가며 전세를 전전하다 2년 전 대출받아 집을 샀는데 이자만 갚는 것도 힘겹습니다. 각종 경조사비에, 연로하신 부모님도 돌봐야 하고…. 마이너스통장 잔고만 쌓여갑니다. 앞으로 길어야 10년. 그때까지 일한다 해도 그 이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저자이면서 남성사역연구소장인 이의수(52) 목사가 23일 들려준 한 중년 남성의 고민이다. 이 사연이 남 얘기 같지 않은 건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직장인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목사는 중년의 난제를 ‘길을 가다 길을 잃어버린 시기’로 표현했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에는 처한 현실이 버겁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미래가 불안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년. 이 목사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는 분기점은 마흔”이라며 “인생의 좌표를 찍어야 하는 시점은 퇴직할 때가 아니라 일을 하면서 가장 안정적일 때, 그리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는 불혹(不惑·마흔 살)의 나이”라고 밝혔다.
인생의 ‘부전공’을 만들라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조일규(40)씨가 취미로 레고 조립을 시작한 건 지난해 4월이다. 2010년 6월 첫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의 회사로 옮긴 뒤 퇴근 후 시간을 그리 보내고 있다. 지난 21일 전화 통화에서 그는 “30대 초부터 열심히 일해 실적도 좋았고 나름 젊은 나이에 승진도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가족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야근을 자주 하다보니 가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어린 두 딸에게 미안한 아버지였다.
“사랑의교회에서 열리는 ‘사랑의 순례’ 프로그램에 참석했는데 목사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회사에 다닐 수 있는 때는 정해져 있다. 퇴직 후에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때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데, 서먹한 딸들과 어떻게 지낼까 싶더라고요. 가족과 사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던졌습니다. 물론 아내가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며 용기를 줬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첫 직장과 달리 새 직장에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조씨는 ‘놀거리’도 찾았다. 그게 레고였다. 하다보니 동네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게 됐다. 아내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내고 작은 사무실도 열었다. 저녁에는 레고 조립실로, 낮에는 피아노 첼로 등 악기 연습실로 운영 중이다. 조씨는 그렇게 인생의 ‘부전공’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전공을 찾을까. 조씨는 평소 좋아한 것 중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무엇을 하고 싶어? 그런데 그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지? 그것부터 시작하자.”
다윗은 돌팔매를 계속 던지다보니 어느 순간 돌팔매 전문가가 됐다. 그리고 골리앗을 만났을 때 돌팔매를 던질 수 있는 위너(winner·승자)의 능력을 발휘했다. 다윗처럼 실현 가능한 것들을 조금씩 성취하다보면 그게 집약되어 나중엔 큰 성공으로 가게 된다. 이게 ‘위너의 법칙’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20년 가까이 초등학교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이진용(52·여)씨가 ‘인생 2막’을 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7년이다. 22일 전화 통화에서 그는 “목회자인 남편이 당시 박사과정 중이라 내가 꼭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방에서 사역하던 남편과 더 이상 떨어져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책 없이 사표를 냈지만 다른 일을 꼭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는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니 늘 마음이 힘들 수밖에요. 다시 새로운 것을 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지요. 신중하게 고민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목회자이면서 가정상담 관련 사역을 해 자연스레 상담 코칭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2009년 상담 공부를 시작, 지난해 8월 마쳤다. 그리고 같은 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서울 금양초등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했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아이들을 만나지만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며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다는 게 좋다”고 고백했다.
이씨의 나이 쉰둘.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직업 교사가 아닌 상담 전문가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고 새 인생을 살아가는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며 그는 웃었다. 조급하게 굴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순간이다.
삶을 조정하는 일부터 시작하라
오는 12월 정년퇴직을 앞둔 박모(57)씨의 현재 솔직한 심정은 막막함이다. 21일 전화 통화에서 그는 “퇴직 후부터 생존”이라며 허탈해했다. 박씨처럼 1955∼63년생을 뜻하는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 730만명이 은퇴하고 있다. 그들은 과연 은퇴를 어떻게 생각할까. 더 이상 쓸모없어 퇴출당하는 것으로 여길까, 아니면 더 멀리 가기 위한 새로운 기회로 볼까.
분명한 건 하나님은 ‘하프타임(Half Time)’을 통해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는 점이다. 다만 사람에 따라 그 시기가 30대일 수 있고, 40대나 50대일 수 있다. 하프타임은 축구의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작전타임이다. 전반전을 아무리 잘 뛰었어도 후반전에 잘 뛰지 못하면 결국 지는 게임이 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후반전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목사는 “돈을 가지고 인생 후반전을 준비한다면 그 순간부터 비참해진다”며 “현재의 삶을 고집하지 말고 다시 삶을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집이나 자동차 유지 등에 필요한 고정 지출을 과감히 줄여본다. 도시의 삶이 감당 안 되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게 다시 삶을 조정한다.
하프타임코리아 대표 박호근 목사는 “성공적인 후반전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매사에 감사하고 삶의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다는 것”이라며 “이때는 성공 추구가 아닌 의미 추구로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이 시기에 고통을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며, 나눔과 봉사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을 더 소중히 여기고 관계 회복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이 들수록 꼭 필요한 건 신앙이다. 영적인 생활이 가장 중요하다.
하프타임코리아는 5월 9∼30일 매주 토요일 서울 광진구 CS프라자 6층 세미나실에서 ‘하프타임 세미나’를 개최한다. 박 목사와 ‘사랑의집’ 진새골가정문화연구원 이사장 주수일 장로가 강사로 나선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시선] 전직… 퇴직… 하나님이 주신 인생 ‘하프타임’
입력 2015-04-25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