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퇴근 후 2시간… 인생 2막 ‘골든타임’

입력 2015-04-25 00:02
‘회사 인간’ 최정수 집사가 초췌한 표정으로 주일 오후 셀 모임에 참석했다. “이번 승진에서 누락됐습니다. 사표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셀 리더인 김영우 장로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회사-집-교회를 쳇바퀴 돌 듯 해온 최 집사다.

“절대 그러지 마세요. 퇴직 후 일을 준비한 뒤 내세요.” 김 장로는 셀 모임 후 자신이 10여년 동안 퇴직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들려줬다. 김 장로는 2001년부터 ‘퇴근 후 2시간’을 퇴직 후 대비에 썼다. 그는 퇴직 후 바로 ‘행복 전문 강사’라는 새 명함을 가졌다.

‘회사 인간’에서 벗어나라

김 장로가 지방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1990년. “인근 야산에 우리 경찰서 서류 800여건이 버려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어요. 소관 부서 직원이 사무 감사를 앞두고 정리하기가 벅차 버린 거였죠. 옷을 벗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중징계는 피했다. 그는 이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이 조직에서 퇴직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막연히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최 집사님이 지금 다니시는 그 식품회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야근하고 매출 목표도 항상 달성하고…. 승진도 가장 빨랐죠. 하지만 퇴직하면 모든 환경이 바뀝니다. 회사에서 가졌던 지위, 권한, 정보는 유동적이고 유한한 것입니다. 왜냐. 퇴직하면 모두 끝이거든요.”

김 장로는 ‘최 부장에서 최씨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했다. “제가 전직 경찰서장 아닙니까. 현직에 있을 땐 보고전화 놓칠까봐 사우나에 갈 때도 휴대전화를 비닐에 싸가지고 다녔어요. 퇴직 후엔 하루에 딱 3통 전화가 와요. 아내가 어디냐고 묻는 전화, 대출해주겠다는 금융기관 전화, 휴대전화 바꿔주겠다는 통신사 전화. 딱 3통입니다.” 최 집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김 장로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만 하던 남편이 집에만 있어봐요. 생활비도 문제지만 평소 대화가 없던 남편과 같이 지내야 하는 아내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지금이라도 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과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命) 자세로 살아야 해요. 아내가 행복해야 모든 일이 잘되고 최선을 다한 뒤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거죠.”



퇴근 후 2시간, 투자하라

최 집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장로님, 평생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퇴직 후 아내 눈치 때문에 쉬지도 못하는 건 참 억울합니다.” 김 장로가 웃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말씀도 있잖아요. 작은 일이라도 하면 사회적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고, 젊어 보이고 가족으로부터 존경도 받아요.”

최 집사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물었다. “2001년 총경으로 승진, 경찰서장이 된 뒤에는 저를 비롯해 부하직원들이 불필요한 야근을 하지 않도록 했어요. 퇴근 후 매일 저녁 제빵학원 다니고, 떡 초콜릿 두부 만들기까지 도전했어요. 근데 손재주가 없다는 걸 확인했죠. 적성에 맞고 재능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해요. 근무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퇴근 후 시간을 투자해서 준비하세요.”

최 집사는 김 장로의 조언대로 퇴직 후 무엇을 할지 알아봤다. 최 집사는 현재 하고 있는 식품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야간 대학원의 농식품 전문가 과정에 다녔다. 퇴근 후 2시간을 이용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실시하는 농업 전문가 교육과정에 지원, 과정을 마쳤다.

그는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 교육에도 참여하고 구인 포털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했다. 포털 채용 공고에서 40대 이상이 지원 가능한 구인 공고는 100개 중 1∼2건에 불과했다. 최 집사는 한 취업 박람회 취업상담 전문가에게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취업 상담 전문가는 안경을 고치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취업 후에도 10년 뒤 준비

“제가 보니 겸손하고 유연한 분들이 취업이 잘 되고 적응을 잘 하시더군요. 중소기업에서 회계를 담당하다 퇴직한 어떤 분은 요즘 쓰는 회계 프로그램을 다시 배워 60대에 재취업하셨어요. 재취업이 제일 힘든 부류는 대기업 임원 출신이에요. 대접 받는 데 익숙하고 체면을 중요시하니까요.” 최 집사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 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난 19일 주일 김 장로와 최 집사는 남선교회에서 퇴직과 재취업 준비에 대해 발표했다. 두 사람의 재취업 성공이 교회에서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최 집사가 먼저 했다. “김 장로님이 3년 전 제게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하라고 하셨어요. 장기적으로 재취업을 준비한 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어요. 농업 전문가 과정을 마친 뒤 취업 공백 없이 한 농수산물 유통회사 대표로 채용됐으니까요.”

김 장로 순서였다. “10년 전 데일카네기연구소 리더십 캠프에 참여한 뒤 강사 과정에 합격하면서 제 달란트를 발견했어요. 정년을 앞두고 경찰교육원이나 소방학교 등에 제 원고를 보내 무료 강연을 자청했어요. 말하는 게 재미있었고 사람들도 좋아했어요. 지금은 전문 강사로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바쁘죠.”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퇴근 후 2시간 투자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연 중 부르는 ‘참 아름다워라’ 반주를 위해 지금도 아코디언을 배우고 있어요. 목회자를 꿈꾸는 아들을 위해 신학 공부도 합니다.” “할렐루야.” 감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최 집사도 말했다. “저도 10년 뒤엔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기 위해 공부 중이에요.” 큰 박수가 터졌다. 지난주 내내 이 교회 화제는 단연 ‘퇴직 후 2시간’이었다.

기사는 ‘현직에서 퇴직 후를 준비하는 퇴근 후 2시간’(나무생각·사진)을 저자의 동의를 받아 크리스천 버전으로 각색했습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