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2) 5발의 총성, 그리고 살아남기-부르키나파소서 가나로 향하던 밀림에서

입력 2015-04-25 00:40
총알이 버스 창문을 관통한 흔적. 고개만 들었어도…. 살아 있는 게 은혜다.

“모두 엎드리세요! 어서 엎드려요! 강도야 강도!” 버스 쪽으로 거침없이 돌진하는 남자의 손엔 총이 들려 있었다. 사태를 파악한 승객들은 버스 통로로 일제히 몸을 납작 붙이기 시작했다. 서로 살겠다고 중앙 통로로 파고들었다. 버스 안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졌다. 누구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튀는 행동을 한다거나 눈만 마주쳐도 죽을 수 있는 분위기였으니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2012년 8월, 부르키나파소에서 가나로 향하던 밀림 한가운데서 강도를 만났다.

“하나님, 제발 살려만 주옵소서. 제발!”

탄식과 울음이 혼재된 곳에서 온전한 판단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승객들은 모두 고개를 처박고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그렇게 5분여가 흘렀을까.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혈류가 머리로 모이는 느낌이었다. 총알이 내 머리 위로 스쳐갔다. 순간 몸 전체가 급히 뜨거워지는 명료한 느낌이 돌았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 분비되고 있었다. 영화가 아니다. 아득해지는 정신줄을 어떻게든 잡아보려 했지만 생각나는 건 한국에 계신 부모님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그려보지만 자꾸 슬픈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1분, 1초, 숨 쉬는 순간마다 지옥의 모든 공포가 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몇 발의 총성으로 질서가 간단하게 잡혔다. 버스는 이제 무장 강도들에게 완전히 장악 당했다.

참호 속에 무신론자 없다고 했던가.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뺏겨도 좋으니 부디 이 지옥에서 살아날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절박한 기도 소리가 들렸다. 다시 또 총알이 버스 내부를 관통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한 승객의 숨죽인 흐느낌이 다른 이들의 심장에 요란한 망치질을 해댔다. 나는 뜨거워진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누가 다쳤는지,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단 한 장면도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만이 중요하다. 세상에서 가치로 재단하던 사회적 지위도, 우월한 미모도, 넉넉한 부도 생명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환상이다.

연이어 다섯 번째 총성이 들려왔다. 실제 야전에서 들리는 총소리의 공포가 이만할까. 죽음이 눈앞에 펼쳐져 있자 비로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외에 지금 이 순간 나를 위로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뜰 수 없었던 내 머릿속엔 죽음, 천국, 그리고 어머니 이 세 단어만 하나님 나라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덩그러니 남겨 있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오직 기도가 전부였다.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부군이 출동한 것이다.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 길에서 다른 버스들이 연이어 무장 강도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맥이 풀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의 기회를 얻은 무한한 감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친 여정 끝에 가나 국경을 넘자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골목을 환히 비추는 가로등 불빛들, 컴퓨터를 이용한 여권 검사, 친근하고 여유로운 표정에서 나오는 익숙한 영어와 거리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평화스러움. 갈증과 허기에 콜라를 마시기 위해 노점상에 들렀을 때 귀여운 꼬마 숙녀는 장사하는 엄마 옆에서 학교 공부를 하고 있었고, 여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God bless you”하며 가나 입성을 축하해 주었다.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눈물 날 정도로 벅차올랐던 인사가 또 있었을까? 온건한 바람을 맞으며 콜라 한 병을 정신없이 털어낸 다음, 다시 한번 살아 있다는 단 한 가지에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