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원자력발전은 불가능”

입력 2015-05-01 02:13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의 신뢰 없이는 원자력발전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동희 기자

이은철(68)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갈등은 신뢰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투명성을 확보하고, 시간을 두고 논의를 계속해 인식의 차이를 좁혀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원자력발전과 관련해 국민들이 전문가들의 기술적인 판단을 믿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서울대 공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역임하는 등 원자력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최근 서울 광화문 원안위 사무실에서 1시간 반 동안 인터뷰를 했다.



-원전과 관련해 국민들의 신뢰도가 낮은 것 같다.

“우리의 잘못이 크다.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어야 했다. 정보 공개를 하고는 있지만 공개되는 정보들이 일반인이 보기에 어려운 것들이다. 예를 들면 원전 심사보고서 등에 관해 일반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 이보다는 원전 주변에서 살기가 정말 괜찮은지,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국민들 눈높이에서 안전성 설명을 못한 것이 잘못이다.”



-원전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원전 사고만큼은 흥미 위주로 가면 안 된다. 엉뚱한 것을 부각시키고,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큰일 날 것처럼 얘기하면 안 된다. 병원을 예로 들면 환자들이 다 중환자는 아니다. 손등에 조그만 상처가 났는데 큰 부상으로 여기면 되겠는가. 전문가들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믿어줘야 한다. 원전 전문가들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불안감을 키우는 경우가 있다. 안전과 위험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원안위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해도 한쪽에선 믿지 않는다. 인식의 차이가 크다.”



-원전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 차이가 있지 않나.

“전문가는 극히 좁은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다. 뇌수술 전문 의사가 다른 분야는 잘 알지 못한다.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끼리도 싸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토론을 하면서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합의점을 찾아간다.”



-투명하게 공개를 안 하고 은폐해서 신뢰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실수했다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숨기곤 한다. 실수를 숨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신뢰도 잃는다. 실수를 노출시킴으로써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물을 경우 운전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운전원들이 사기가 꺾이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원전은 작은 고장도 용납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원자력 부품이 200만개인데 고장 없이 운영하는 것은 욕심이다. 기계는 고장이 나게 돼 있다. 중요한 것은 고장이 다른 고장으로 계속 이어져 사고가 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원전은 부품 하나가 전체 시스템을 망가뜨릴 정도로 설계되지 않았다.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자동차 브레이크를 예로 들면 브레이크가 고장 날 것에 대비해 자동차 한 대에 브레이크를 최소한 3∼4개 갖추고 있는 격이다. 이것을 다중성이라고 한다. 원전 일부 기계가 조건을 벗어나면 강제로 세우도록 만든다.”



-원안위가 원전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원안위를 구성하는 9명이 모두 기술적인 전문가는 아니다. 기술적인 검토는 이전 단계에서 끝낸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뒤지지 않는 원전 전문 인력이 있다. 400명이 넘는 각 분야 전문가(원자력안전기술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두 번 세 번 검토를 한다. 이어 외부 전문가들(전문위원회)이 모여서 논의를 한다. 9명은 기술 외적인 것,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기준을 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기술적인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공학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어 일반인들과 상당히 차이가 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성에 관한 기본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의 부작용을 부각시켜 전체를 오도하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들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도 위원이 5명인데 3명이 법률가다. 법률가가 원자력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술적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원안위도 기술적인 부분은 수백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의견을 믿고 중시한다. 원안위를 기술적인 전문가들로만 채우려면 9명이 아니라 수백명이 있어야 한다. 원안위원이 할 일은 기술적인 디테일한 것보다 안전 기준이라든지 목표치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든, 안전 기준에 관한 것이든 원안위를 믿어도 좋다.”



-원전 전문가도 아닌데 반대만 하는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들도 전문가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아니더라도 정책 같은 부분에서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원전의 방사선 위험도를 가지고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전문가부터 괜찮다는 전문가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점점 좁혀진다. 어느 정도의 합의를 이뤄가는 것이 사회다. 우리가 그 단계까지 못가는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이야기를 존중하는 일이다. 지금 문제는 상대방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것이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자기주장을 하되 다른 사람 이야기도 일리가 있다고 여기면서 조금씩 이견을 좁혀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것이 된다. 우리는 아직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신뢰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계속 해야 하는 일이다. 반대와 비판이 있기에 견제가 되는 측면도 있다. 원전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더 노력하고 철저히 하고 있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결정 과정에서 원안위가 여론의 눈치를 봤다는 지적이 있다.

“국민 여론을 수용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다. 원전 운영과 관련해 지역주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원안위가 여론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오해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신청이 2009년에 들어왔다. 서류적합성 심사만 1년 가까이 걸렸다. 2010년 말 심사에 들어갔는데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안전 대책 50개를 추가로 만들었다. 그래서 기간이 길어졌다. 국회에서도 보완책을 요구했다. 그래서 심사가 늦어졌다.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그러지도 않는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표결처리하기보다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할 수 없었나.

“이전 단계를 제외하고 원안위에서 논의한 시간만 40시간이 넘는다. 같은 얘기가 반복됐다. 안전 문제와 관련 없는 얘기가 계속됐다. 한 번 더 연기해도 같은 얘기가 반복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표결처리를 한 것이다. 날치기라는 주장은 좀 억울하다(웃음). 수명연장이라는 말도 적절치 않다. 외국에서는 수명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는다. 원전에 수명은 없다. 부품에 수명이 있을 뿐이다. 수명이 다한 부품은 교체하면 된다. 다만 원안위가 계속운전을 결정한 다음에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을 정비하고 보수했어야 했다. 이미 2007년에 6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다음에는 그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수명연장 신청은 법적으로 수명이 끝나기 5년 전에, 늦어도 2년 전까지 하게 돼 있다. 그런데 한수원은 꼭 2년 전에 신청한다. 원안위가 충분히 심사할 여유를 안 주는 것이다. 가급적 5년 전에 해야 한다.”



-고리 1호기 수명을 재연장하지 말고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신청이 들어오면 심사를 할 수밖에 없다. 사전에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서류를 제출하도록 개정된 법에 규정돼 있다. 고리 1호기는 서류심사를 할 때 주민 의견이 없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결국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원전은 힘들어진다.” 신종수 부국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