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흔해졌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 에세이는 쏟아지며 블로그에도 여행기가 넘쳐난다. 그래서 괜찮은 여행기에 대한 갈증은 거꾸로 커질 수밖에 없는데, 누구라도 솔깃할 문학의 대가(大家)가 낸 여행서가 동시에 나왔다.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36)와 일본의 세계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6). 시대와 장르를 달리한 두 대가의 여행서는 서로 다른 색깔로 유혹한다.
릴케는 ‘보헤미안’을 자처하며 20대 초반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이집트 등 세계 각지를 다녔다. 여행은 문학세계의 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여행서는 릴케 문학 읽기의 연장이다.
‘릴케의 프로방스 여행’(문학판)이 그렇다. 엑상프로방스, 아를, 아비뇽 등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며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편지 등을 엮은 것이다. 아내 클라라 뿐 아니라 문학적 뮤즈 살로메, 시인 홀레비츠, 조각가 로댕, 건축가 뮐 등이 그의 편지가 도착했던 상대라 릴케의 지적 교유의 폭을 가늠케 한다.
눈부신 빛의 도시 프로방스는 릴케가 ‘보는 법’을 탐색한 곳이다. 표현 수단으로서 언어의 한계를 절감한 그는 회화와 조각 등 조형예술에서 영감을 얻고자 했다. 예컨대, 세잔의 작업실에서 세잔의 예술가적 고뇌를 더듬는 릴케의 행위에 치열성이 보이는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세잔과 고흐, 고갱이 모더니즘을 개척했던 프로방스에서의 여정의 끝에 릴케는 마침내 이렇게 얘기한다. ‘저는 보았고, 배웠으며, 파악하였습니다.’
사전지식이 없으면 전후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은 있지만 역자 황승환의 해설이 훌륭한 가이드 노릇을 해준다. ‘릴케의 이집트 여행’도 함께 나왔다.
하루키의 책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문학사상)는 부담 없이 술술 읽힌다. 그가 여행기를 쓰는 방식이 흥미롭다. 하루키는 여행하는 동안 세밀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작은 수첩에 ‘부표’처럼 일시나 장소, 숫자 같은 걸 짤막하게 메모할 뿐이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글쓰기를 잊어버리고 눈앞의 풍경에 자신을 몰입시키려 한다. 하루키의 말마따나 그의 몸이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되는 것’이다. 또한 돌아와 한두 달 쯤 지나 어느 정도 삭힌 상태에서 쓰는 것이 그의 버릇이다.
이 여행에세이는 일본 내에선 무인도 까마귀 섬, 고베 도보 여행, 우동 맛집 기행을 담았고 해외에서는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성지로 불리는 뉴욕 인근 이스트햄프턴과 대륙 횡단, 몽골과 멕시코 여행까지 아울렀다.
고베 도보 여행은 지진 피해를 입은 고베 근처 고향을 15㎞ 정도 걷는 것에 불과하지만, 여행지로 택한 것 자체가 여행의 의미를 묻게 하는 힘이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감정 과잉이나 과장이 없어 좋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하루키도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을 꿈꾸었다. 그러나 정작 실행에 옮겼을 때 그가 만난 건 늘 같은 풍경과 매일매일 모텔 간판만 바뀌는 지루함이었다. 하루키는 ‘새로운 종류의 따분함’이라고 했다.
며칠을 묵을 작정으로 들어갔던 무인도에서 벌레 때문에 하루 만에 도망쳐 나왔다는 얘기, 멕시코에서 식중독에 자꾸 걸렸던 고생담 등은 직장 동료 여행담처럼 친근하다. 1999년 출간된 걸 개정해 냈다. 김진욱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읽을수록 깊은 맛… 두 대가의 길 위의 날들
입력 2015-04-24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