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병원을 운영하는 A씨(43)는 서울 강남에서 여의도까지 25㎞ 거리를 한강 둔치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전기자전거로 출퇴근한다. 길이 막히지 않고, 전기자전거라 힘들게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된다. 소규모 인테리어업체 사장 B씨는 자신의 자동차에 전기자전거를 싣고 현장으로 출근한다. 전기자전거는 현장 근처에서 못 등 필요한 작업용품을 간단히 사러갈 때 주로 이용한다.
전기자전거는 전기로 충전되는 배터리와 이를 이용하는 모터가 장착돼 있어 페달을 밟지 않더라도 오토바이처럼 손잡이를 당기면 전기모터의 힘으로 달릴 수 있는 자전거다. 이명박정부 시절 ‘녹색 성장’의 상징으로 인식돼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다소 수그러들었다. 요즘 전기자동차가 뜨면서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주행거리의 한계, 제도적 결함 등이 겹쳐 전기자전거 시장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봄바람과 함께 전기자전거 대거 출시=만도, 삼천리자전거, 알톤스포츠 등 국내 전기자전거 빅3업체들은 최근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만도는 2년4개월 만에 체인 없이 100% 전기로 움직이는 전기자전거 ‘만도 풋루스’의 2세대 모델인 ‘풋루스 아이엠’을 출시했다. 1세대 모델에 비해 가격이 447만원에서 286만원으로 내렸다. 삼천리는 주력 제품인 ‘팬텀’ 시리즈 라인업을 강화했다. 도심 주행에 적합한 ‘시티’와 비포장도로에 유리한 ‘XC’, 운반이 쉬운 ‘미니’ 등 라인업을 갖춰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알톤스포츠는 지난 1일 타이어 폭이 넓은 ‘팻 바이크(Fat Bike)’ 스타일의 ‘이. 맘모스’ 등 신제품 3종을 추가해 인기모델인 ‘이스타 에스’ 등 모두 5종의 전기자전거 라인업을 완성했다. 영국 전기자전거 브랜드인 ‘A2B’도 백화점 입점 등을 통해 유통망을 넓히고 있다.
◇전기모터로만 30∼40㎞=요즘 출시되는 전기자전거는 배터리 기술의 발달로 전기모터로만 30∼40㎞, 페달의 도움을 받으면 60㎞ 정도의 주행거리를 자랑한다. 물론 경사도, 가속 정도 등에 따라 주행거리가 달라진다. 전기자전거를 구매한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도 제품에 표시된 주행거리만큼 달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배터리 충전시간이 4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이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동네 근처 마트나 약국 등을 오가는 근거리 이동수단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개인사업자들의 출퇴근 수단으로 전기자전거 시장이 조금씩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서울시민의 평균 출근거리는 11.1㎞(2013년 서울시 수도권 주민통행 실태조사)로 전기자전거 주행거리면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도 전기자전거의 만만찮은 가격은 시장 확대의 걸림돌이다. 많이 팔리는 전기자전거는 100만원대 제품이 대부분이고, 400만원에 가까운 고급 모델도 있다. 전기자전거 주요 부품인 리튬이온배터리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야마하 A2B 등 수입 자전거의 경우도 싼 모델은 180만∼190만원, 고급모델은 400만원에 육박하며 국산 전기자전거도 비슷한 수준이다. 전기자전거의 편리함이 오히려 판매를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유럽 등 외국에서 전기자전거는 통근이나 통학, 장보기 등의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전거가 근거리 교통수단보다는 주말 레저용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의 운동기능 대신 편리함을 강조한 전기자전거의 인기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전기자전거는 어디로 갔을까=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춘추관과 경호처 등에는 전기자전거가 10대 이상 비치돼 있었다. 자동차 모터 등을 만드는 제조업체 삼현의 전기자전거 브랜드인 ‘하이런’ 제품이었다. 하이런은 한때 연 4000∼5000대의 전기자전거를 판매하던 국내 1위 전기자전거 업체였지만, 2012년 전기자전거 사업에서 철수했다. 삼현 관계자는 23일 “전기자전거 수요가 생각만큼 커지지 않았고, 이윤도 박했다”며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전기자전거 사업을 계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업계에서는 전기자전거의 연간 판매 규모를 1만∼2만대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 자전거 시장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만도 관계자는 “전기자전거 판매 현황을 집계하는 기관이 없다 보니 연 판매량을 추산할 수밖에 없다”며 “1만대 안팎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업체에 따라서는 올해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를 3만대로 추산하기도 한다.
반면 세계 전기자전거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내비갠트 리서치(Navigant Research)’에 따르면 2013년 3056만대 규모였던 전 세계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지난해 3178만대로 커졌고, 올해는 3305만대, 2018년에는 3622만대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이나 서유럽 일부에서는 경찰의 근거리 이동수단으로 전기자전거가 이용되기도 한다.
◇전기자전거의 애매한 법적 지위=전기자전거의 법적인 지위도 문제다. 중학생이 전기자전거를 타면 불법이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달릴 수 없다. 전기자전거는 법적으로 자전거가 아니라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와 비슷한 장치로 보는 것이다. 전기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원동기장치자전거(스쿠터나 오토바이용) 면허’가 필요하다. 이 면허는 만 16세 이상이 딸 수 있는데, 당연히 만 16세 미만 청소년이나 면허증이 없는 사람이 전기자전거를 타면 불법이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기자전거는 차도로만 다녀야 한다. 일본이나 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는 전기자전거를 일반 자전거와 동일하게 대우하고 있다. 전기자전거를 일반 자전거처럼 대우하기 위한 법 개정 작업은 18대 국회부터 논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한 채 현재도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전기자전거 업계 관계자는 “법적인 문제 때문에 전기자전거 마케팅을 소극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며 “친환경 이동수단인 전기자전거 시장 확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
[경제 히스토리] 4대 장애물에 덜컹덜컹… 속도 못 내는 전기자전거
입력 2015-04-24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