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부모와 떨어진 남매의 시골살이, 그 앞에 펼쳐진 자연들

입력 2015-04-24 02:02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가면 산이 까맣게 무서웠다.’

도시의 밤에 깜깜함은 없다. 야간 조명으로 밤도 환하다. 커튼을 치지 않는 한 어딘가에서 불빛이 방안으로 새어 들어온다. 시골은 다르다. 그림책의 주인공 보미는 남동생 재영이와 시골 할아버지 댁에 살러왔다. 사정은 모르지만 아버지는 아이들만 훌쩍 내려놓고 서울로 갔다.

시골살이를 하는 보미에게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인상은 깜깜한 밤의 산이다. 그리고 아침이 돼 방문을 열면 그 산은 마치 코앞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선명하다.

도시에서 살아온 보미에게 시골은 모든 게 낯설다. 더욱이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해 기가 죽어있다. 2학년이 모두 4명뿐인 학교는 왜 그리 작은지.

하지만 처음 아빠 차를 타고 시골에 올 때 차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는 보미의 표정은 봄기운이 돌면서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땅에서 돋아나는 풀, 아침의 새소리, 뒷산의 보랏빛 오동꽃…. 더욱이 할아버지 선생님은 예전에 아빠를 가르치셨단다.

글쓰기 시간에 보미는 시골생활을 글로 썼다. ‘할머니께서/ 풀 같은 것을/ 거꾸로 들고/ 나무 막대기로/ 탈탈 털었다/ 거기서 깨가/ 하얗게 쏟아졌다’. 보미의 글을 보고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골생활이 어느덧 슬슬 몸에 익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다. 풀잎에 맺힌 빗방울을 터는데 엄마 얼굴이 떠오르니.

글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67)의 작품이다. 전북 임실의 덕치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에서 길어 올린 글이라 울림이 크다. 툭툭 던지는 듯한 간결한 글맛도 일품이지만, 사실적으로 그린 맑은 수채화 기법의 그림은 오래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정감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