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정치인의 전화받기

입력 2015-04-23 02:10

정치인이 유권자 전화를 받았을 때의 반응이다. △선거기간 중/지금 어디 계신가요. 당장 그쪽으로 달려갈게요. △당선 직후/아이고 반갑습니다. 곧 연락 한번 드릴게요. △당선 2년 후/제가 지금 회의 중이라서 그만. △공천탈락 후/전화기가 꺼져있으니 음성사서함으로…. 우스갯소리지만 매사 표(票)로 계산하는 정치인의 속성이 잘 나타나 있다. 굳이 나쁘다고 탓할 일만도 아니다.

취재기자 전화를 성의 있게 받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만섭 전 국회의장, 박지원 의원을 꼽는다. 노 전 대통령은 전화를 할 때마다 진정성을 갖고 응대한다. 아무리 바빠도 기자가 묻는 말을 끝까지 경청한다. 무엇보다 답변 내용이 진솔해서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전 의장은 소탈함이 돋보인다. 기자 출신답게 앞뒤 재지 않고 거침없이 답하는 스타일이다. 대답이 부실했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전화를 걸어 수정하기도 한다. 박 의원의 전화 대답은 대변인 출신답게 간단명료하면서도 논리가 정연하다. 상황을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에 기사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활동이 왕성한 정치인은 휴대전화를 여럿 갖고 다니며 온종일 통화를 한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자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나 유착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성 전 회장 휴대전화의 최근 1년간 착·발신 기록을 확인한 결과 이 총리와 210여 차례, 이 실장과 140여 차례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실장은 기자들에게 “전화가 왔는데 받는 게 당연하지. 난 (오는 전화를) 다 받는 사람이다. 내가 피할 일이 뭐 있느냐”고 말했단다. 하긴 통화가 자주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무리다. 횟수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걸 밝히는 것은 검찰 몫이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 의지인데 기대치를 과연 어디쯤 둬야 할까.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