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하고 1주일이 지났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지. 그날 딱 30분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방송에서 나온 한 줄 자막, ‘승객 전원 구조’.
수백 명이 탄 여객선이 바다에 빠졌다는 소식에 오전 편집회의는 크게 술렁였다. 우리의 참사(慘事) 역사를 되돌아보면 분명 희생자가 클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원 구조라니, 한 부서장이 그랬다. “기사 방향을 틀어야겠는데요. 대한민국 재난구조의 한 획을 그었다고 써야겠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은 기자에게도 ‘악몽’이었다. 하필 그날 편집국의 밤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 야간국장 당번이었다. 새벽까지 물 위에 비스듬히 떠 있는 세월호를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늘어만 가는 사망자와 실종자 숫자를 신문지상에 반영해야만 했던 기억은, 저 배 안에 큰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있다는 참담함은, 서서히 침몰해가는 배를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자괴감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끝까지 의연했던 아버지가 아들이 한줌 재로 사라진 뒤 화장터 벽에 머리를 찧으며 울던 모습이 떠오르면 여전히 눈물이 맺힌다.
한 유가족 부모는 사고 이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차에서 잠을 잤다. 밤에 부부 둘만 있으면 아이가 죽었다는 게 너무 실감나 고통스러워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생존 학생들도 심각하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자기 혼자 살아나온 것에 대해 죄의식이 들어 희생된 친구들의 부모를 만나면 가슴이 떨린다고 한다. 안산지역 주민 10명 중 1명이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
여기 또 다른 ‘죽음’이 있다. 성완종. 그의 극단적인 선택이 가져온 결과에 우리는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 부패 척결을 선언한 국정 2인자 국무총리,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청와대 비서실장들, 집권당 대표와 사무총장, 주요 당직자 출신 시·도지사군(群)…. ‘성완종 리스트’는 우리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호텔 헬스장에서, 선거 사무실에서, 국회 의원회관에서 검은돈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건네졌다. 그것도 백주대낮에.
권력형 비리를 숱하게 봐온 우리들이지만 이번 상처는 유독 깊다. 이제는 사라졌을 것이라는 믿음이 무참히 깨진 탓이다. 이제는 끝날 때도 됐는데, 추잡한 공생(共生) 카르텔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로 국민들은 정신적 외상을 크게 입었다. 후진적 대형 선박 사고에 이어,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뇌물 스캔들로 자존감이 다쳤다. 이른바 ‘성완종 트라우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숱한 질문을 던졌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대통령부터 안전한 대한민국,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위정자(爲政者)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그만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책을 낸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상처 입은 개인을 혼자 내버려두면 상처가 계속해서 번져나간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우리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1년 7월 극우 테러로 77명이 숨지고 242명이 다쳤던 노르웨이는 ‘집단의 회복 없이는 개인의 회복은 어렵다’며 전 국가적 치유작업을 벌였다. 절실하게 다시 질문해 본다.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와 성완종으로부터 정신적 상처를 입은 국민들을 치유할 능력이 있는가?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민수] 국민을 치유할 수 있는 정부인가
입력 2015-04-23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