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이 ‘거물급 브로커’를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포스코건설 측은 회사 내부 규정을 임의로 바꿔가며 가욋돈을 마련해 브로커에게 전달했다. 이 브로커는 정 전 부회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을 뿐더러 1997년 대선 직전 ‘총풍 사건’과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되는 등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21일 검찰에 따르면 브로커 장모(64·구속기소)씨는 2010년 하반기 중학교 동창인 정 전 부회장에게 공사수주 관련 청탁을 했다. 포스코건설에서 발주한 베트남 ‘노이바이-라오까이’ 고속도로 프로젝트의 하도급 공사 일부를 W사가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장씨는 사전에 W사 황모 대표와 상의해 공사계약 대금의 3.5%인 15억원가량을 로비 대가로 받기로 했다.
장씨의 로비는 통했다. 당시 고속도로 프로젝트 현장소장이던 박모(52·구속기소) 전 포스코건설 상무는 W사에 낙찰 예정가격이 430억원가량 될 것이라고 미리 귀띔해줬다. W사는 이 금액에 맞춰 하도급 견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포스코건설은 입찰 ‘들러리’ 업체를 직접 동원해 ‘입찰가를 430억원 이상으로 써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장씨의 청탁을 받은 정 전 부회장이 박 전 상무에게 직접 일사불란한 일처리를 주문한 것으로 본다.
2011년 2월 W사와 S사가 계획대로 공사를 수주하자 그해 5월 장씨는 약속대로 두 업체로부터 총 15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장씨는 포스코건설과 협력업체 측에 돈을 추가로 요구했다. 정 전 부회장과 친밀한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박 전 상무에게 압력을 넣었다. 그해 11월 박 전 상무는 공사 착공 전인데도 공사가 시작된 것처럼 꾸며 장씨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 회사 내부 규정을 임의 변경하는 방식으로 가욋돈 10억원을 조성했다. 이 돈은 W사와 S사를 거쳐 장씨가 베트남 현지에 설립한 회사로 넘어갔다.
장씨는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총풍 사건과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거물급 브로커다. 총풍 사건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북한 측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이를 막기 위해 장씨를 포함한 특별팀을 꾸려 북한과 물밑 접촉을 추진했었다. 장씨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 캠프에 불법 대선자금 15억원을 배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포스코 관계자와 장씨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를 통해 장씨가 챙긴 총 25억원 가운데 일부가 정 전 부회장에게 전달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의 길이 보인다. 정 전 부회장 소환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총풍’ 연루됐던 거물급 브로커 정동화 등에 업고 거액 비자금
입력 2015-04-22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