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중앙대 재단 이사장의 사퇴를 불러온 ‘막말 이메일’ 내용은 ‘사담(私談)’으로 넘기기에 도를 넘어서는 극언 수준이었다. 대기업 총수로서 대학을 인수한 뒤 학사행정에 깊숙이 개입해 ‘파워’를 휘두른 정황까지 드러나 있다.
◇“목을 쳐버리겠다”=21일 외부로 알려진 박 이사장의 이메일은 지난달 24일 이용구 중앙대 총장과 보직교수 20여명에게 발송된 것이다. 박 이사장은 이메일에서 “그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며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썼다. 이 이메일은 검찰이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중앙대 특혜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이사장이 지칭한 ‘그들’은 중앙대가 지난 2월 발표한 학사구조개편안에 반발하는 교수들이다. 당시 중앙대는 학과제 폐지를 핵심 내용으로 학사구조개편안을 발표해 인문학 교수 등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박 이사장은 이메일에서 이틀 후로 예정된 긴급 토론회 문제로 총장과 보직교수들을 압박했다. 당시 중앙대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학내 집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박 이사장은 “(교수들을) 악질 노조로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이메일에는 “인사권을 가진 내가 법인을 시켜서 모든 걸 처리한다”는 대목도 있다. 박 이사장의 ‘월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에서 경영은 법인 이사장, 학사운영은 대학 총장이 맡도록 돼 있다. 이 발언대로라면 실정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박 이사장은 다른 이메일에서도 김누리 독문과 교수 등이 주도하는 ‘중앙대 비대위’를 비하했다. 수차례 “Bidet위(비데위)” “조두(鳥頭)”로 표현했다. “그들을 꽃가마에 태워 복귀시키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음을 중앙대 인사권자로서 분명히 한다”고도 했다.
지난달 25일 이메일에서는 학생 명의로 된 현수막을 게시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경희대 한양대 등 전국 45개 대학 학생회는 중앙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박 이사장은 중앙대 총학생회 이름으로 “환영 3류대 학생회 대표단, 너희 대학이나 개혁해라, 우리는 개혁으로 초일류가 되련다”는 현수막을 걸도록 했다.
◇대기업식 대학 구조조정 좌초하나=박 이사장이 2008년 6월 취임한 뒤 중앙대에선 대기업식 구조조정이 꾸준하게 진행돼 왔다. 총장 직선제 폐지와 교수 성과급 연봉제 등을 도입하고, 2013년에는 비교민속학과 등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과를 폐지해 갈등을 빚었다. 이번 학사구조개편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구조개혁이 불가피해지면서 중앙대의 학사구조개편안이 힘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당분간 주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앙대와 두산그룹이 당장 결별하진 않을 전망이라 불씨는 남아 있다. 중앙대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중앙대의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중앙대와 교수·학생들은 정시모집에 한정해 학사구조개편안을 도입하는 쪽으로 합의한 상태다. 향후 수시모집으로 개편안을 확대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중앙대 논란 이어 ‘막말 이메일’… 잇단 악재에 퇴장
입력 2015-04-22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