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도중 총리 사의 표명이라는 국정공백 상태를 감내한 채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사실상 수용한 것은 이 총리 체제로는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여론 역시 최악으로 치닫는 만큼 총리 사퇴라는 해법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이후 박 대통령의 첫 반응은 현지시간 20일 오후 3시쯤(한국시간 21일 오전 5시쯤) 나왔다. 5시간 동안의 빼곡한 한·페루 정상회담 일정을 마친 뒤 한·페루 비즈니스 포럼 참석 직전이었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 내내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후 “매우 안타깝다”고 직접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국정이 흔들리지 않고 국론 분열과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다”며 정치 개혁 차원의 확실한 검찰 수사를 주문했다.
‘성완종 파문’이 이 총리 낙마까지 이어질 정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의혹과 국정 표류를 막기 위해선 철저한 진실 규명만이 그 해답이라는 얘기다. 특히 순방 출국 직전에 이어 ‘정치 개혁’을 거듭 강조한 것은 향후 모든 의혹과 그 관련자는 예외 없이 법과 원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지론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이미 순방 출국 전 이 총리에게 자진사퇴의 길을 열어줬다는 시각도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의 회동 후 나온 박 대통령의 ‘귀국 후 이 총리 거취 결정’ 언급은 이미 총리 사퇴를 기정사실화했으며, 그 시점만 총리에게 일임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27일 귀국 후 이 총리 사표 수리라는 공식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사표는 요식행위이고 사의가 중요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처리는 귀국해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총리 사퇴만으로 현재 어지러운 정국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는다는 게 박 대통령의 또 다른 고민이다. 더 이상의 국정 표류 상태를 막기 위해 ‘급한 불 끄기’ 차원의 해법은 나왔지만 혼란스러운 정국을 반전시킬 뚜렷한 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이번 메가톤급 악재는 검찰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박 대통령으로선 올 상반기 어렵게 되찾은 국정 동력의 실종 사태를 다시 맞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정치 개혁과 확실한 검찰 수사를 강조하면서 아울러 경제 살리기와 국론 분열 방지를 언급한 것은 이 같은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박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국정 2인자인 후임 총리 인선이다. 그동안 수많은 후보자들이 떠올랐다 검증 과정에서 낙마했던 만큼 박 대통령에겐 또 다른 장고(長考)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소식이 전해지자 말을 아끼면서도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박 대통령 순방을 수행하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는데 청와대에서 더 할 말이 있겠느냐”고 했다.
리마=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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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2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