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를 즉각 수용한 것은 더 이상의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이 총리는 대통령 남미 순방 중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국정을 챙기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새로운 의혹에다 잦은 말 바꾸기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총리직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 상황에서 총리의 영(令)이 설 리 없고 자리에 연연해봤자 국론분열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 총리가 예상보다 일찍 결단을 내린 게 그나마 다행이다.
대통령 해외순방 중 비리 혐의로 총리가 유고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국정이 중심을 못 잡고 표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서울청사에서 21일 열린 국무회의도 총리 다음 서열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국회 인사청문회 및 임명동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새 총리 임명 때까지 최 부총리가 총리직무대행을 상당 기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내각은 최 부총리를 중심으로 국정을 더 꼼꼼히 챙기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최 부총리 또한 내각을 확실하게 통할함으로써 총리 공백에 따른 국정의 비정상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총리 사퇴로 박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자) 5명 가운데 정홍원 전 총리를 제외한 4명이 불명예 퇴진하는 오점을 남겼다. 대통령 개인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매우 불행한 일이다. 국정 혼란을 수습하는 첫 단초는 신속한 후임 총리 임명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확산되는 시점에 총리의 장기 부재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총리를 임명해야 국정의 비정상이 단축되고, 내각이 중심을 잡는다.
비상시국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결단력과 야당과도 통하는 정치력을 겸비한 인물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후임 총리는 ‘깜짝 인사’보다는 이미 국민의 검증을 받은 인사 중에서 발탁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임명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로 총리가 낙마하는 불상사가 다시 일어난다면 그 화가 박 대통령 개인의 차원을 넘어 나라에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의 진상을 밝히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요구는 당연하다. 그러나 해결이 시급한 다른 민생 현안을 제쳐두고 여기에 올인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주장은 주장대로 하되 국정이 신속히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정부·여당을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협력하는 광폭의 정치가 필요하다 하겠다. 반사이익에만 기대는 정치의 약효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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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리 부재상황에도 국정은 흔들려선 안 된다
입력 2015-04-22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