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부안 출신 청년이 여자친구에게 함께 여행가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여자친구는 단둘이 여행가는 게 조금은 불안했지만 평소에 가고 싶었던 채석강에 간다는 청년의 말에 흔쾌히 따라나섰다. 하지만 가도가도 채석강은 나오지 않고 차는 산 속으로만 들어갔다. 청년은 채석강이 아닌 곳으로 데려간 것이다. ‘채석강 구경’을 ‘미끼’로 내세웠지만 채석강의 속설을 염두에 뒀던 청년은 ‘채석강 피해 가기’로 ‘작업’을 한 셈이다.
부안 사람들은 아름다운 채석강을 ‘돌 깨는 작업장인 채석장(採石場)’으로 부르기도 한다. 연인과 함께 가면 ‘채석장 돌이 깨지듯 사랑이 깨진다’는 속설이 여기서 나왔다. 그래서 데이트하러 안 간다는 것이 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이제 이 속설을 깨뜨릴 수 있다. 채석강에서는 수천년 동안 파도와 바람이 빚어놓은 해식동굴을 만날 수 있다. 바닷물이 잠시 물러간 사이 격포항쪽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큼직한 동굴이 반긴다. 이 동굴이 포인트다. 동굴에 들어가서 위치를 잘 잡으면 동굴 앞쪽 단면과 뒤쪽 단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전설의 동물 ‘유니콘’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양에서는 유니콘이 행운과 성공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채석강에서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하면 사랑도 예쁘게 채색될 수 있다.
부안의 대표적인 관광지 채석강은 선(先)캠브리아대 화강암·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있고 중생대 백악기인 약 7000만년 전에 퇴적한 성층으로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겹겹이 층을 이루게 됐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깎인 퇴적층이 마치 수 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거대한 장관을 이룬다. 파도가 일렁이는 그 절벽 앞에 서면 켜켜이 쌓인 세월과 자연의 신비감이 더해진다. 해안가 바닥은 끝없는 바위멍석을 깔아놓은 듯하다. 저녁노을이 손길을 뻗으면 ‘사랑의 물감’으로 채색된다.
채석강은 얼핏 한강, 낙동강과 같은 ‘강’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글자로는 똑같지만 바닷가 절벽 암반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에 취해 강물 속의 아름다운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태백이 놀던 채석강과 견줄 만큼 아름다워서 차용했다고 한다.
서해로 달리던 노령산맥 줄기가 호남평야에서 숨을 고른 뒤 마지막으로 용틀임을 한 변산반도는 채석강 외에도 산과 바다 그리고 각종 명승지를 품고 있어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채석강 바로 옆에는 격포항이 있다. 옛날 수군 진이 설치됐던 곳으로 수군별장, 첨사 등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할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북쪽해안으로 이어진 1㎞ 지점에 채석강과 비슷한 자연경관을 갖춘 적벽강이 있다. 이 곳 역시 소동파가 놀던 곳과 비슷해 이름이 붙었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갈기를 자랑하는 사자의 모습이다. 붉은 색 암반과 수많은 해식동굴들이 줄무늬를 온몸에 감고 있어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북쪽 해안에서는 신비한 지질구조를 만날 수 있다.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분지로 주상절리, 페퍼라이트(peperite), 돌개구명, 층내교란구조 등이 독특하다. 페퍼라이트는 뜨거운 마그마나 용암이 차가운 미고결 퇴적물과 직접 접촉할 때 형성된 화산암과 퇴적암의 혼합 암석으로 아름다운 무늬가 특색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을 찾으려면 물이 빠진 썰물 때 찾아야 한다.
부안의 대표브랜드 누에타운도 볼 만하다. 누에타운은 150년 전통의 누에마을인 유유마을에 있다. 유용한 곤충인 누에의 생활과 산업적 이용을 보여주는 과학관과 탐험관으로 구성돼 있다. 오디, 뽕, 누에의 과거와 미래를 보고 배우는 체험관도 있어 어린 아이들과 관광객들로부터 각광을 받는다. 고사포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 뿐 아니라 전라좌수영 촬영세트장과 영상테마파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변산의 낙조는 ‘서해안 3대 낙조’ 로 불릴 만큼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다. 특히 솔섬의 일몰은 연인들의 마음마저 붉게 물들이는 황홀경을 선사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곰소만 쪽으로 향하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곰소만 갯벌은 새만금 간척사업 이후 전북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갯벌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각종 훼손행위가 금지됐다. 대신 모항과 두포마을에서 바지락과 백합 등 조개캐기, 진흙놀이 등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곰소항 근처에는 젓갈집 천지다.
항구 북쪽에는 곰소염전이 있다. 갯벌이 깨끗할 뿐 아니라 염분이 많아 질 좋은 천일염 생산지로 이름이 높다. 반듯하게 정리된 바둑판 모양의 염전과 검은 판자로 지은 소금창고 등이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격포와 곰소항 사이의 모항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어촌마을이다. 1999년 12월 31일 ‘새천년을 잇는 영원의 불씨’를 채화했던 곳이다. 아름다운 노을과 일출을 볼 수 있다. 시인 안도현은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이라고 했다.
변산의 자연을 두 발로 기억케 할 수 있는 ‘변산 마실길’도 있다. 총 4개 구간 66㎞ 길이의 마실길은 부안의 관광자원을 묶어놓은 ‘관광종합세트’다. 새만금홍보관에서 격포항에 이르는 1구간(18㎞)과 격포항에서 모항갯벌체험장까지 닿는 2구간(11.4㎞), 모항갯벌체험장에서 곰소염전에 이르는 3구간(23㎞), 곰소염전에서 줄포자연생태공원까지 가는 4구간(11㎞)으로 나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부안=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의 곰소염전을 헬리캠으로 찍었습니다. 바둑판 모양의 염전과 검은 판자로 지은 소금창고 등이 참 예쁘네요.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046397&code=14170000&cp=nv
Posted by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