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새끼고양이 ‘단어’

입력 2015-04-22 02:10

새끼고양이를 입양했다. 내가 키운 생명은 고작 선인장이 전부였다. 관심을 갖되 물은 가끔 주라는 말을 지켰지만 말라죽었다. 그런 나로서는 이번 일이 여간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10여년 타지에서 살았지만 옆방에는 늘 친구가 있었다. 서로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에도 함께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덜 외로웠던 듯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혼자 살게 된 것이다.

“2주만 부탁할게.” 새끼고양이를 데려오기 전, 친한 언니가 여행을 가면서 일곱 살 된 러시안블루를 부탁했다. 이름은 ‘미호’다. 언니가 미호를 두고 간 날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지 미호는 밥을 잘 먹지 않았다. 다행인지 회사를 그만둔 나는 대부분 집에서 보냈다. 미호는 서서히 기운을 차리더니 조금씩 다가왔다. 내가 글을 쓸 때면 곁에 쌓아놓은 책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그 곁에서 잠들기도 했다. 물론 미호가 노트북 위에서 보채거나 책꽂이의 책들을 떨어뜨릴 땐 야단을 치기도 했지만 우린 제법 잘 지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언니가 돌아왔다. 미호는 자신을 버리고 간 것을 응징하듯 그녀를 본체만체하고 나만 따라다녔다. 그녀는 “이제 널 두고 가는 일 없을 거야, 미안해”라며 미호를 안고 떠났다. 작은 생명체가 잠시 있다 사라진 건데 집안이 텅 빈 듯했다. 그제야 나는 생명을 돌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미호가 가고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나는 ‘단어’라고 이름지어주었다.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날, 어느 시인의 강연에서 그 시인이 내뱉는 단어들이, 그 단어가 모여 만들어진 문장들이 너무 고와서였다. ‘단어’도 조금씩 자라 멋진 ‘문장’이 되길 바라며 나는 그 이름을 자주 부른다.

‘단어’는 이제 어엿한 식구가 되어 집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어딘가에 숨어 눈에 띄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온기로 단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내 거친 손이 단어를 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날마다 발자국 소리를 줄이려 애쓰지만 무언가를 돌보는 그 조심스러움이 좋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