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폭력 수위… 세월호 추모는 뒷전으로

입력 2015-04-21 03:16 수정 2015-04-21 09:36
폭력이 빚어진 ‘18일 세월호 집회’를 놓고 판이한 두 시각이 맞서고 있다. 경찰은 이 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규정했다. 반면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진압을 추모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찰의 과잉대응이 시위대를 자극했다고 지적한다. 여론도 양쪽으로 갈라졌다. 과격시위가 먼저냐, 과잉진압이 먼저냐. 양측이 이 문제에 집착하는 사이 세월호 추모 분위기는 뒤편으로 밀려나고 있다.

◇폭력=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경찰이 19일 강경 입장을 밝히면서 내놓은 채증 자료는 당시 시위의 과격함을 보여줬다. 경찰 버스는 험악하게 망가졌고, 차체에는 스프레이 페인트 낙서가 흉측하게 남았다. 의경들은 귀가 찢어지거나 유리 파편에 머리가 찢겼다.

폭력의 증거를 손에 쥔 경찰 입장은 단호하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불법·폭력 행위자를 색출해 사법처리하고 차량 파손 등에 대해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18일 연행된 100명 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모 변호사 등 5명에 대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책임’을 물을 대상으로 집회를 주최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대표들을 주목하고 있다. 공동운영위원장은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박석운 진보연대 대표, 변연식 국제민주연대 대표,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 회장, 문규현 신부,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혜진 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 대표, 이호중 서강대 법대 교수, 만화가 박재동씨 등 10명이다.

◇누구 책임인가=경찰은 지난 11일 시위대 해산에 최루액을 사용했다. 16일에는 차벽으로 광화문광장 일대를 봉쇄하고 시위대를 고립시켰다. 18일에는 물대포까지 분사했다. 11∼18일 4차례 집회 중 경찰과 충돌하지 않은 건 17일뿐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면서 처음 빚어진 충돌은 서로 치고받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구 서울청장은 “11, 16일 집회는 불법집회로 변질됐고 18일에는 불법을 넘어 폭력집회로까지 번졌다”며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은 행진을 차단한 경찰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은 이날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부상과 장비 파손은 경찰 지휘부의 반인권적 진압 계획이 낳은 결과”라며 “위헌 결정이 난 차벽에 맞서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의사는 “(시위대 측도) 부상자만 수십명”이라며 “경찰 폭력에 찢어지고 손톱이 빠지고 단기 의식 상실까지 보인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퇴색=누구 말이 더 옳으냐를 떠나 이런 논란은 ‘세월호 여론’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폭력시위 공방이 가열될수록 세월호 이슈의 본질은 가려지게 된다. 지난해 9월 ‘대리기사 폭행’ 사건이 그런 경우였다. 세월호 유가족이 휘말린 이 사건은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빌미를 제공했다. 유가족들은 경찰 조사를 받고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도울 대상’에서 ‘비판 대상’으로 격하되는 상황을 겪었다.

시위가 과격해지고 대치가 길어질 경우 상황은 시위대 측에 더욱 불리하게 작용한다. 2008년 5월 시작된 촛불집회는 수개월을 이어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열기가 식었고 보수 진영의 목소리는 커졌다. 세월호 가족도 이런 상황을 의식하고 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집회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운 것에 대해 “결코 우리가 준비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그런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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