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대, 여러분도 장애인 될 수 있다”

입력 2015-04-21 02:35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의 날인 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우리도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 장애인을 배려합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발언이다. 그런데 장애인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며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앞에 두고 1분 새 다섯 차례나 이런 말을 한다면?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4·20 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투쟁단’은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보신각까지 침묵행진을 하고 ‘차별철폐 총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장애인·인권 관련 시민단체 70여곳이 참여했다. 참가자 300여명은 “장애인의 날이 동정으로 차별과 억압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대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오전 10시쯤 보신각 인근에서 집회를 할 때 벌어졌다. 한 경찰간부가 경찰 기동대를 향해 “오늘은 장애인들의 생일 같은 날이니 차분히 대응하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경찰관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흥분하지 말고 시위대를 배려하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50초간 일곱 차례나 ‘장애인’을 언급하며 다섯 차례는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발언은 의도와 달리 시위대를 자극했다. 참가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크게 반발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애인이 되는 것은 나쁜 것이란 뜻이 들어 있다.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한명희 노들장애인야학 상근간사도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해 달라고 촉구하는 행사에서 경찰이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점이 실망스러웠다”고 꼬집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경찰인 우리는 물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 흥분하지 말고 집회를 안전하게 진행하도록 협조하자는 취지였는데 오해가 있었다”며 “발언으로 상처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8일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에서 시위대를 연행하며 “우리 경찰들 잘하고 있습니다. 여유 있게 시위대 한 명, 한 명 끌어내십시오” 등 중계방송식 해산명령을 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