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의혹을 빨리 해소하겠다. 여느 때보다 세밀해야 해 시간이 걸린다.” 20일 ‘성완종 리스트’ 검찰 특별수사팀의 다짐은 지난해 말 ‘비선실세 문건’의 실체를 확인하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되풀이하던 말과 닮았다. 당사자들의 만남부터 입증해야 하는 수사팀 상황은 정윤회(60)씨와 소위 ‘십상시’(十常侍·정씨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한다고 지목된 청와대 안팎 인사들)가 서울 강남에서 회합했는지 수사하던 당시와 비슷하다.
외부에서 발견된 ‘문건’에 따라 시작된 수사라는 점, 수사선상에 권력 핵심부가 올라 있다는 점도 두 특별수사의 공통점이다. 다만 이번 수사팀이 받아든 과제는 훨씬 까다롭다. 만남을 확인한다 하더라도 금품 전달에는 별개의 입증이 필요한 데다 직접 현장을 목격했다는 ‘귀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문건 작성자가 매일같이 검찰에 출석해 진술했지만 이번에는 숨진 상태다.
의혹만 크고 증거는 부족한 상황에서 기초 단서는 휴대전화였다. 이번 수사팀은 성 전 회장의 측근 11명에게서 확보한 21대의 휴대전화를 분석해 이들의 과거 동선을 재구성했다. 통신사에 협조를 요청해 특정번호들의 착·발신 내역도 조회 중이다. ‘정윤회 문건’ 수사팀도 차명폰을 포함해 문건에 언급된 이들의 1년치 통화내역을 분석, 동시간대 같은 기지국을 이용했는지 따졌다.
수사팀은 한국도로공사에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사건 관련 차량들의 최근 3년간 고속도로 하이패스 사용내역 제출을 요구한 상황이다. 금품 전달 장소로 추정되는 곳 주변의 CCTV까지 파악해 조사하고 있다. 기지국 이용 사실에 기반한 휴대전화 위치추적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휴대전화를 쓰지 않으면 위치 기록이 남지 않는 데다 통신사들은 이 기록을 1년만 보관한다. 성 전 회장이 주장한 금품 전달 시기는 길게는 9년 전(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근 사례조차 2년 전(이완구 국무총리)이다.
정윤회 문건 수사팀은 회합 장소로 문건에 적시된 강남 J식당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식당 주인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했다. 이번 수사팀은 참고인들 소환에 앞서 불법자금의 원천 및 성격까지 입증한다는 목표로 일해 왔다. 검찰의 한 인사는 “자료가 방대할뿐더러 방대하게 수집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번 수사팀과 달리 이번 수사팀에 ‘동선의 일치’를 확인하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성 전 회장 측근들은 성 전 회장과 유력자들의 독대를 어느 정도 시인하면서도 돈이 건너간 장면을 봤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수사팀 관계자가 “귀인을 기다린다”고 토로할 정도다.
이에 따라 리스트 인사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 계좌추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고액현금 거래 내역을 요청하는 방안도 수순이 될 전망이다. FIU 관계자는 “검찰은 자금흐름을 의심하는 수사 사례마다 협조를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다만 계좌에 흔적을 남기며 뇌물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의 공통된 관전평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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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1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