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방자치단체와 기업 간에 체결하는 투자 양해각서(MOU)가 실제로 투자 가능 여부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묻지마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투자 유치 실적을 쌓을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거둘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가 국가식품클러스터 투자 유치 과정에서 실체도 없는 페이퍼컴퍼니와 MOU를 체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남도청은 신재생에너지 복합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해 2010년 9월 미국 태양광 에너지서비스 업체인 MEMC사와 2013년 말까지 400㎿ 규모의 태양광 발전사업에 투자하기로 MOU를 맺었다. 그러나 태양광 관련 시장이 침체되면서 2012년 3월 결국 없던 일로 됐다. 대구시도 2012년 5월 미국 태양광 업체 스타이온과 3억2000만 달러를 투자받기로 하고 2013년부터 공장을 착공할 계획이었지만 투자 시기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경북도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경북도청은 2012년 5월 한 식품업체와 봉화 지역에 900억원을 투자해 종돈(씨돼지)단지를 조성키로 하는 MOU를 맺었다. 당시 도청은 단지가 조성될 경우 종돈의 유전자 개량과 육가공 사업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이 사업은 주민 반발로 중단됐다. 도청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지난해 투자유치 실적에 이 내용을 포함시켰다. 도청 관계자는 “MOU는 체결 즉시 바로 투자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3∼4년은 지나야 한다”며 “실제 투자가 이뤄질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청은 투자하기로 MOU를 맺었던 미국 리조트 회사가 중국 베이징에 투자를 했는데도 ‘투자 진행 중’으로 분류해 실적을 부풀렸다가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지적받기도 했다. 충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따르면 민선 5기 때인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충북도청과 MOU를 맺은 기업이 투자를 약속한 금액은 14조7642억원이지만 실제 투자액은 1조2099억원(8%)에 그쳤다.
MOU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은 행정 절차가 지연되거나 사업 중간에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애초 MOU를 체결할 때부터 투자가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MOU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MOU를 많이 맺으면 지자체의 성과로 비쳐질 수 있어 ‘치적쌓기용’으로 활용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도 홍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식의 체결이 이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대 경제정책팀장은 “체결할 때부터 투자 계획이나 경제적 효과를 명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해당 시의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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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1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