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상품에 투자했다가 운용사 측의 부정행위로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에게 집단소송을 허가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의 집단소송 허가 결정은 2004년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이다. 집단소송에서 대표소송인이 승소하면 전체 피해자가 동일하게 구제받을 수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양모(60)씨 등 2명이 한화증권과 로얄뱅크오브캐나다(RBC)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 허가신청 사건에서 집단소송을 불허한 원심을 깨고 허가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양씨 등은 2008년 4월 한화증권이 발행한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인 ‘한화스마트 주가연계증권 제10호’를 매수했다. 이 상품의 총 발행액은 68억7600만원, 투자자는 437명이었다.
이 상품은 기초 자산인 포스코와 SK 보통주의 주가가 1년이 지난 시점에 기준가격의 75%(주당 11만9625원)를 넘어서면 22%의 수익금을 더해 돌려주는 구조였다. 한화증권과 스와프계약을 체결한 RBC가 이 상품을 실질적으로 운용했다.
상환만기일인 2009년 4월 22일 SK 보통주는 11만9625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장 마감을 앞두고 급락하기 시작해 11만9000원까지 주가가 빠졌다. 결국 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투자자들은 원금의 74.6%만 돌려받고 손실을 봤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실질적 운용사인 RBC를 의심했다. 의도적으로 SK 보통주를 대량 매도해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조사에 착수한 금융감독원은 ‘수익률 조작 의혹이 있다’고 결론 내렸고, 양씨 등은 집단소송 허가신청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RBC의 시세 조종 이후에 거래한 경우에만 집단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불허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RBC의 부정행위가 투자자의 권리 행사 또는 조건 성취에 영향을 줬다면 집단소송 대상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RBC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는 앞으로 진행될 소송 결과를 봐야 한다. 양씨 등 피해자 142명은 집단소송과 별개로 낸 같은 취지의 민사소송 1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결정은 하급심에 계류 중인 다른 집단소송 허가신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진성TEC㈜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이 최초로 수원지법에서 허가를 받았지만 소송이 화해로 종결됐다. 현재 동부증권과 한국투자증권, GS건설, 동양증권 등에 대한 집단소송 허가신청이 제기된 상태다. 이 중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GS건설에 대한 집단소송을 허가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대법, 증권 투자자 집단소송 허가 첫 결정… “운용사 부정행위 영향이라면 집단소송 대상에 포함해야”
입력 2015-04-21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