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죽음의 배’… 700명 탄 난민선 전복

입력 2015-04-20 04:06
18일(현지시간) 지중해에서 침몰한 선박에서 구조된 난민이 의료팀의 도움을 받아 이송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홈페이지

난민 700여명을 태우고 18일(현지시간) 리비아를 출발한 선박이 지중해에서 전복돼 탑승객 대다수가 사망했다. 중동·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밀항 행렬이 대형 선박 사고로 이어져 지중해가 ‘난민들의 무덤’으로 전락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이날 밤 이탈리아령인 람페두사섬에서 남쪽으로 약 193㎞, 리비아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27㎞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한 이번 난민선 전복 사고로 대부분의 탑승객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19일 보도했다. 사고는 배 위의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지나가는 상선의 주의를 끌고자 한쪽으로 몰리면서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와 몰타의 해군과 상선이 사고 해역에서 뒤집힌 선박을 발견해 수색과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현재 구조된 인원은 28명에 불과하다고 BBC는 전했다. 1주일 전인 지난 12일에도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이 전복해 400여명이 숨졌다. 참사가 반복되고 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밀항 거점인 리비아를 떠나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수는 급증하는 추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올해 들어 최소 1500명이 유사한 전복 사고로 사망했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희생자의 30배에 달한다고 전했다.

밀항선은 대부분 낡고 작은 배에 난민들을 무리하게 태우는 초과승선이 만연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져 왔다. 특히 리비아 해안도시로부터 200여㎞ 거리에 불과한 ‘난민 허브’ 람페두사섬으로 향하는 해역에 난민들이 집중되면서 침몰·전복 사고로 인한 ‘람페두사의 비극’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경수비대는 여름이 다가오면서 약 50만명의 난민이 유럽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7만명의 난민이 아프리카와 중동의 빈곤과 내전을 피해 이탈리아로 ‘위험한 횡단’을 감행했고 국제이주기구(IOM)는 이들 중 3072명이 사고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 사망자 700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유럽에 불법 입국한 난민은 28만명에 달한다.

가디언은 “유럽이 국경 봉쇄로 대응한다고 하더라도 밀입국 업자들은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밀항 비용 폭등으로 오히려 이익만 늘어날 것이라며 배짱을 부리는 상황”이라면서 유럽 각국이 공고하게 고착화된 난민 수송 비즈니스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들은 우리처럼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자 굶주리고 박해받고 부상한 전쟁의 피해자들”이라며 “추가 비극을 막을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EU 소속 외무·내무 장관에게 긴급 회동을 요청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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