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크다면 이란은 더 크다. 러시아가 개방했을 때는 황량했지만 이란은 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는) 한 세대에 일어나는 기회다.”
자산관리 자문회사 그리핀캐피털의 산야르 케이만자르 공동 창업자가 최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이란과 서방이 핵 협상을 타결하면서 경제 제재를 받던 이란의 문이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이자 각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란을 주목하고 있다.
이란에 눈독 들이는 에너지 기업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P5+1)과 이란이 지난 2일 스위스 로잔에서 핵 협상을 타결하면서 대이란 제재도 풀릴 전망이다. 최종 타결은 6월 30일까지 맺기로 했지만 이미 서방 기업들은 이란 시장 진출 채비에 나섰다. 이란은 2007년 골드만삭스가 선정한 ‘11개 유망 국가’에 포함됐을 정도로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그동안 핵 개발에 따른 경제 제재로 투자가 제한됐다.
특히 에너지 기업들이 이란에 눈독을 들인다. 이란은 원유 매장량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세계 2위다. 전국 187곳에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는데 이 중 40%는 미개발 상태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네덜란드 로열더치쉘, 노르웨이 스타토일, 스페인 렙솔, 프랑스 토탈 등이 2010년 이란에서 발을 뺀 이후 5년여 만에 ‘컴백’을 노리고 있다.
경제 제재가 풀려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급증하면 최근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국제 유가가 추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원래 원유 생산량이 하루 360만 배럴 수준이었지만 2011년 이후 280만 배럴로 줄었고, 원유 수출도 제재 이전의 절반인 하루 110만 배럴 정도로 뚝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제재가 풀리면 수개월 안에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은 이미 수출 목적으로 원유 3000만 배럴가량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이란국영석유회사(NIOC)는 “2018년까지 하루 570만 배럴 규모로 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란이 당장 산유량을 늘리지 않고 원유 재고만 풀어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에너지뿐 아니라 각종 소비재 시장도 경제 제재 해제에 따른 특수를 노릴 수 있는 대표적 분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의 천연자원보다 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8000만명의 이란 국민이라고 전했다. 중산층도 두터워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자문회사 인큐비메아의 창업자 알리 보르하니는 WSJ에 “이란인은 먹고 소비하고 쇼핑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며 “(소비에 대한) 그들의 회복력은 놀랄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보르하니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에 이란 거리를 누볐던 캐딜락, 뷰익, 머스탱 등 미국산 제품에 대한 이란인의 향수가 여전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유럽보다 미국 기업들이 우위를 점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란에서 휴지는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브랜드인 ‘크리넥스’로 불린다”면서 “브랜드 충성도가 어마어마하다. 제재 이후 세계에서 이란은 가장 흥미로운 프런티어 마켓”이라고 평했다.
IT 회사들도 이란을 노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13년 중도 성향의 하산 로하니 정권 출범 이후 이란 정부가 3G, 4G망 구축을 위해 애쓰고 있고 IT 주소도 이미 100만개 넘게 사들이는 등 개방적인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는 데 힘써온 점을 강조하며 IT 업계의 투자 전망도 밝다고 분석했다.
금융 제재로 막혀 있던 해외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될 길이 열리면서 이란 정부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경제 규모는 세계 19위다. 대부분 중동국가의 경제는 원유산업에 집중돼 있지만 이란은 농업(10%) 제조업(10%) 서비스업(35%) 광업(45%) 등 산업이 다변화돼 있다.
특히 이란과의 전통적 경제 파트너인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기업들의 이란 진출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란 수도 테헤란의 주요 호텔들은 외국 투자자들로 붐비고 있다고 한다. CNN머니 등은 “30년 넘게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돼온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함에 따라 서방 자본들이 물밀듯 밀려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기업도 절호의 찬스
우리 기업들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우리 건설사들이 1980년대부터 이란에 많이 진출했지만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 건설·플랜트 수주가 막혔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중동지역 수주액은 총 40억7000만 달러(약 4조4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140억1000만 달러)의 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이번 핵 협상 타결로 정유회사들이 이란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 자연스레 우리 플랜트와 기반시설 발주도 대폭 늘어날 수 있다. 석유화학·건설·플랜트는 우리나라가 경쟁우위에 있는 분야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이란 핵 협상 잠정 타결은 향후 건설·플랜트 등 우리 기업의 중동진출 확대에 큰 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동차, 가전, 석유화학, 철강 분야 수출기업에 다양한 사업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 제재 속에서도 교역이 이뤄졌던 철강과 자동차 부품은 이미 대이란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낙관적으로만 바라보기엔 아직 이르다. 지난 2일 타결된 협상안은 잠정안일 뿐이고 앞으로 제재 해제 시점 등 쟁점에 대한 이견을 해소해야 한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도 지난 9일 “아직 어떤 합의도 완성되지 않았다”며 “세부 사항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란과의 무역 상담 등을 진행하는 ‘클라이드 앤 코’ 변호사 패트릭 머피는 WSJ에 “이란이 협상 내용을 준수했다는 사실이 검증되지 않는 한 투자가치는 별로 없다”며 “최악의 경우는 이란의 미이행으로 제재가 다시 부과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월드 이슈] 인구 8000만 이란 시장… ‘알라딘의 램프’ 열리다
입력 2015-04-21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