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폭탄’을 맞은 이완구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 해외순방 기간 중 처음으로 외부 일정을 소화했다. 4·19혁명 5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여야 지도부 등 정치권 인사들과 얼굴을 맞댔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진 뒤 이 총리와 여야 정치인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이례적이다. 총리직 수행 의지를 재차 보였지만 얼굴엔 금품수수 의혹에 따른 거취 문제 고심이 역력했다.
이 총리는 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4·19혁명의 정신을 받드는 또 하나의 길은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4월 정신을 온전히 받들기 위해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며 “정부는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분야 구조 개혁을 적극 추진해 경제 재도약 토대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갈수록 파고가 높아지는 ‘자진사퇴론’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간접 메시지였다.
이 총리는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총리직에서 사퇴할 뜻이 없음을 다시 내비쳤다. 그는 거취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대통령께서 안 계시지만 국정이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면서 “국정을 챙기겠다”고 답했다.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 움직임에 대한 입장을 물었을 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념식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연합 소속인 이석현 국회부의장, 정의당 천호선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기념식에 앞서 오전 7시45분쯤 당 지도부와 함께 헌화·분향했다. 문 대표 측은 “정부 기념식은 사실상 이 총리가 주관하는 행사다.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시점에서 총리의 업무 수행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주말 동안 이 총리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심사숙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 버티는 게 박근혜정부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판단 때문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말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터지면서 주저앉았다 겨우 정상 궤도로 올랐던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다시 30% 중반대로 급락한 것도 이 총리에겐 부담이다.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 상실 빌미를 자신이 제공하게 될 수 있다는 점도 고심거리다. 그러나 이 총리는 아직은 총리직을 유지해야 한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금 더 여론의 추이와 검찰 수사 향배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총리는 외부 행사에서도 정치인 시절 교류하던 여야 인사들에게도 형식적인 인사 외의 말은 최대한 아끼는 모습이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췄던 김 대표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악수만 했고, 유 원내대표와도 마찬가지였다. 야당 정치인들과는 더더욱 말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병기 청와대)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국정 현안을) 보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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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0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