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大 말기질환자 절반 이상 수술·검사 마다했다

입력 2015-04-20 04:17 수정 2015-04-20 08:15

품위 있는 죽음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말기환자들은 얼마나 그런 죽음을 선택하고 있을까. 암을 제외한 10대 말기질환에서 사망 직전 수술·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 ‘적극적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의 현황이 처음 공개됐다. 최근 4년간 폐질환, 뇌졸중, 울혈성 심부전 등으로 숨진 환자의 절반 이상은 삶이 끝나기 직전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하지 않았다. 97% 이상이 완화의료 대신 항암치료를 받는 말기 암 환자와 대조적이다. 말기 암 위주로 짜여진 호스피스 완화의료 정책에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말기질환자, 수술·검사 거부하다=19일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2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기관지 기능이 저하되는 ‘만성 폐색성 폐질환’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숨진 사람은 1만9348명이다. 이들의 사망 직전 의료이용 행태를 건보공단 내부 자료를 토대로 적극적·비적극적으로 구분한 결과, 비적극적 치료를 받은 사람이 1만371명(53.6%)으로 적극적 치료를 받은 8977명(46.4%)보다 많았다. ‘비적극적 치료’의 기준은 말기 상황에서 수술을 하지 않고 X선 촬영·CT·MRI·양전자 단층촬영(PET) 등 검사도 하지 않은 경우다.

뇌졸중으로 4년간 상급종합병원에서 숨진 1만455명 중에서도 5853명(56.0%)이 비적극적 치료를 택했다. 적극적 치료를 선택한 4602명(44.0%)보다 많았다. 울혈성 심부전 환자도 54.0%가 수술·검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 밖의 다른 말기질환자가 사망 직전 비적극적 치료를 택하는 비율은 루게릭병 76.3%, 만성 간경화 73.9%, 파킨슨병 73.1%, 만성 신부전 39.2%, 치매 73.7%, 쇠약 85.0%, 에이즈 52.6% 등이었다. 말기질환자가 비적극적 치료를 택하는 비율은 종합병원·병원급에서 더 높아졌다.

◇말기암 환자는 끝까지 적극적 치료=같은 기간 사망한 말기암 환자의 이 비율은 정반대였다. 상급종합병원 기준으로 비적극적 치료 비율이 2.3%에 불과하다. 거의 대부분인 97.7%가 숨질 때까지 수술이나 고가의 검사, 처치 등을 받았다. 종합병원·병원급에서도 적극적 치료의 비율은 각각 97.2%와 94.8%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말기암 환자보다 다른 말기질환 환자들이 실질적 완화의료를 더 많이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종 직전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추세가 암이 아닌 다른 질환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호스피스 완화의료 정책은 말기암 위주다.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실시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건강보험은 암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다른 말기질환 환자는 7월 이후에도 비싼 비용을 부담해야 호스피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암 위주로 할 것이냐 다른 질환으로 확대할 것이냐는 논쟁 중이다. 대부분 의사는 말기암에 국한하자는 입장이다. 간호학계와 야당 등은 범위를 넓히자고 주장한다.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일 다른 말기질환에까지 완화의료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암 관리법 전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최영순 건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적극적 치료를 택하지 않고 병원에 누워 있는 다른 말기질환 환자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므로 그 환자와 가족에게도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완화의료 확대, 건보 재정에 도움=암 이외 말기진환으로 완화의료를 확대하면 상당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건보공단 내부 자료 분석 결과, 말기 울혈성 심부전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적극적 치료를 택했을 때(약 887만원)와 비적극적 치료를 택했을 때(118만원)의 1인당 평균 병원비(건보 급여진료비)는 약 769만원 차이가 났다. 뇌졸중 환자도 742만원 차이가 발생했다.

이와 별도로 건보정책연구원은 오는 7월 이후 말기암 환자 가운데 10%가 적극적 치료에서 완화의료로 돌아서면 상급종합병원 단계에서만 약 42억7600만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50%가 완화의료로 옮기면 건강보험 부담이 약 282억원 줄어든다.

다만 다른 말기질환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을 확대하면 추가로 건강보험 재정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김 의원이 법안 발의 과정에서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받은 ‘비용추계’ 자료를 보면 완화의료 전문기관을 추가로 60개 지정할 경우 앞으로 5년간 160억8000만원이 더 필요하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