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죽어가요. 사람 좀 찾아주세요.”
지난 6일 낮 김모(36)씨가 울먹이며 서울 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로 다급히 들어왔다. 김씨는 “여자친구 정모(34)씨가 결핵으로 죽어간다”며 “미국으로 이민 간 정씨의 친언니를 찾아 달라”고 했다.
정씨는 관악구 신림동의 한 원룸에서 혼자 지냈다. 어머니는 20여년 전 가족을 떠나 연락이 끊겼고, 아버지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2013년 언니가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제안했지만 ‘짐이 되기 싫다’며 혼자 남았다. 언니와 연락도 잘 하지 않았다. 남자친구인 김씨와 멀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김씨가 오랜만에 정씨 소식을 들은 건 지난 3일이었다. 원룸 주인이 “정씨가 결핵으로 2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어간다”며 연락을 해왔다. 김씨는 병원에 바로 입원시켰지만 의사는 결핵균이 온몸에 퍼져 며칠을 살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이름, 생년월일,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갔다는 정보만 갖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카스텔라가 먹고 싶다”기에 사다 준 카스텔라를 먹고 정씨가 의식을 잃자 김씨는 병원 인근 지구대 문을 두드렸다.
황재혁(30) 경장과 허정규(57) 경위도 정씨의 친언니가 출국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황 경장은 답답한 마음에 외교부 담당자에게 전화해 사정을 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외교부 홈페이지에 적힌 미국 한인단체, 한인언론사 50곳에 메일을 보냈다.
정씨는 6일 밤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간절한 마음은 먼 이국까지 전해졌다. 교민들로부터 하나둘 연락이 오고, 각 지역 한인회장과 한인언론 기자 등이 나서 사연을 현지신문과 라디오 등으로 전파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미국인과 결혼해 성을 바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민자의 생년월일과 입국일을 대조했다. 마침내 정씨의 언니를 찾아냈다. 정씨의 언니는 지난 15일 새벽 황 경장에게 전화해 “곧 동생의 장례를 치르러 가겠다”며 오열했다.
황 경장은 19일 “늦게나마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고시원서 쓸쓸히 숨진 30대 女 마지막 길 ‘유일한 혈육’ 美 이민 간 언니 찾아 준 경찰
입력 2015-04-20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