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성완종 리스트’ 파문] ‘32억 책임론’ 갈등… 4월 3일 검찰청사서 고성·말다툼

입력 2015-04-20 02:34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검찰에 소환됐던 지난 3일 검찰청사에서 최측근 중 한 명이자 경남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한모(50) 전 부사장과 언성을 높이며 격한 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기업 현장전도금 인출액 32억원에 대한 한 전 부사장의 검찰 진술 때문이었다. 검찰은 이 돈을 성 전 회장의 비자금으로 의심하고 있다.

당시 성 전 회장은 “네가(한 전 부사장) 이럴 수 있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구명을 위해 뛰어다니던 그는 지난 9일 볼펜으로 휘갈긴 금품 메모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비자금 의혹을 소명하는 과정에서 최측근이 등을 돌리자 진퇴양난에 빠졌고 1주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3일의 다툼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19일 복수의 성 전 회장 측근과 검찰 등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한 전 부사장 등과 몇 차례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정관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한 ‘출구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실상 한 전 부사장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하며 고삐를 죄어오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한 전 부사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역)에 출석해 비자금 조성 등은 성 전 회장의 지시에 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현장전도금 명목으로 빠져나간 32억원의 출금내역 등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와 관련 자료도 제출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을 지난 3일 소환했다. 그는 한 전 부사장이 자신의 지시와 다르게 진술한 것을 알고 당황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술이 엇갈리자 검찰은 오후 늦게 한 전 부사장을 소환했다. 대질신문을 하진 않았는데 검찰청사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쳤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은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을 배신자 취급하자 한 전 부사장은 “회장님 지시대로 따른 것밖에 없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성 전 회장은 변호사를 붙여주겠다고 제안했지만 한 전 부사장이 거절했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을 같은 날 부른 적은 있지만 언쟁 관련 보고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사를 받고 나온 성 전 회장은 본격적으로 구명운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즈음 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성공불융자가 뭔지도 모른다. 정계 활동을 넓히면서 모두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억울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지인은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성 전 회장은 전화가 올 때마다 번호가 바뀌었다. 자기 딴에는 조심했는데 내부에서 비리 폭로가 나오자 당황한 것 같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경남기업에서 근무하며 상무를 거쳐 CFO 자리에 앉은 한 전 부사장은 성 전 회장이 정계에 뛰어든 이후 사실상 경영을 책임졌다. 그는 경남기업에서 이사로 있던 성 전 회장의 장남 승훈(34)씨와 갈등을 빚었고, 이후 승훈씨는 퇴사했다. 승훈씨의 측근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문경영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승훈이랑 몇명이 함께 경남기업을 나와 회사를 차렸다”고 설명했다. 한 전 부사장은 성 전 회장 사망 이후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 잠행하면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민철 정부경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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