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배려하고 공감하는 판사가 되고 싶어”… 장애인의 날 재판연구원 되는 시각장애인 김동현씨

입력 2015-04-20 02:21

“(시력을 잃은 후) 듣고 또 들으면서 공부해 왔다. 사회적 약자의 얘기를 경청하는 판사가 되고 싶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한 김동현(33·사진)씨는 연세대로스쿨 2학년이던 2012년 5월 불의의 사고로 양쪽 시력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에게 앞날이 깜깜하기만 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고에 대해 아직까지 언급을 꺼릴 정도로 큰 고통이었다. 사고 전만 해도 분쟁을 해결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다른 시각장애 법조인들의 발자취였다. 2012년 첫 시각장애인 판사로 임명된 최영(35·연수원41기) 판사의 얘기를 전해 듣고 힘을 얻었다. ‘눈은 잃었지만 꿈까지 잃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오가며 공부 방법을 연구했고 1년 휴학 후 곧바로 복학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 공부 시간은 배로 늘었다. 법학 책을 문서파일로 변환해 컴퓨터 낭독 프로그램으로 들었다. 꼭 필요한 도서의 파일을 구하지 못해 난감한 일도 있었다. 주위 학우와 법조인들이 김씨를 도왔다. 저술한 책의 파일을 김씨에게 보내준 교수들도 있었다. 학우들은 한 과목씩 맡아 필기를 도왔다. 최영 판사는 2013년 김씨를 직접 만나 식사와 운동을 하며 격려했다. 부모님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김씨는 “모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 초 로스쿨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최근 제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고 20일 서울고법 재판연구원(로클럭)에 임용된다. 로클럭은 2년 임시직이지만 법관 임용 때 좋은 경력이 될 수 있어 법조계에서는 ‘예비판사’로도 불린다. 이날은 제35회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김씨는 “더 어려운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것이 모두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며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애를 갖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당장 이루지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면 더 좋은 내일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격려했다. 서울고법은 김씨 사무실에 보조원과 함께 2인용 청음실, 시각장애인용 낭독 프로그램 등을 지원한다. 점자유도블록 등 장애인 편의시설도 확충하거나 보완했다.

보건복지부는 20일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열고 복지 증진에 앞장선 유공자를 포상한다.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 민원봉사실 등을 운영한 강원도지체장애인협회 김흥수(66) 회장에게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하는 등 총 16명의 유공자를 선정해 포상한다. 지체 장애를 겪으며 한의학 공부를 마친 뒤 저소득층 학생 학업지원, 장애인 요트선수 양성 등에 앞장선 부산 광도한의원 강병령(55) 원장 등 3명은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는다.

복지부는 기념식에서 ‘장애인·비장애인 바른 표현 사용 캠페인’ 선포식도 갖는다. 장애우라는 표현 대신 장애인, 일반인이라는 표현 대신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써야 함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다. 기념식에선 또 장애인 인식 개선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차승원씨가 장애아동 신은성(10)양과 함께 장애인 인권헌장을 낭독한다.

나성원 권기석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