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 與대표 경선-대선의 해 인출액 증가… 현장전도금 인출 실태로 본 로비 의혹

입력 2015-04-18 02:19

검찰이 정·관계 로비에 쓰였다고 의심하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현장전도금’ 인출액 32억원은 2011년을 기점으로 빼내는 액수가 급격히 불어났다. 현금시재(회사가 보유 중인 현금)에서 돈을 빼내 쓰다가 2011년부터는 계좌에서 인출하는 방식으로 비자금 조성 수법도 바뀌었다. 검찰은 이 무렵부터 한나라당 대표 경선과 총선, 대선이 이어진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전도금 명목으로 인출된 회삿돈 32억원은 성 전 회장의 범죄혐의액 250억원 중 용처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성 전 회장 측근에 따르면 2007년 10월∼2014년 10월 370여 차례 나뉘어 빠져나간 전도금은 주로 성 전 회장 개인 용도에 쓰였다고 한다. 경남기업에서 재무를 담당했던 한 임원은 “성 전 회장은 한 달에 1000만∼2000만원씩 회삿돈을 빼서 써 왔다”며 “월 매출이 1000억원이 넘어 단순비용으로 처리해도 큰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주로 지역구에서 밥을 사고 관리하는 데 쓴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이 특히 주목하는 시기는 2011∼2012년이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과 총선, 대선이 잇따랐던 때에 전도금 인출 규모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2007년 7575만원에 불과했던 전도금 규모는 2011년 7억1200만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한 번에 빼가는 액수도 커졌다. 수백만원 단위였던 1회 인출액은 2011년 이후 많게는 5500만원까지 수천만원 단위로 불었다.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던 기존 방식이 계좌에서 찾아 쓰는 것으로 바뀐 것도 이 무렵이다.

전도금 인출 규모가 급증한 시기는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때와 맞물린다. 성 전 회장은 한나라당 대표 경선 전인 ‘2011년 5∼6월쯤’이라고 했고, 주변 인물들은 더 구체적으로 ‘6월’이었다고 말한다.

전도금은 실제 이때를 전후해 집중적으로 빠져나갔다. 그해 4월 11일과 17일 각각 3500만원을 인출했다. 5월 12일에는 두 차례에 걸쳐 3500만원을 찾았다. 6월 들어서도 경남기업 자회사인 대아건설 계좌에서 9일(두 차례에 걸쳐 3500만원)과 16일(한꺼번에 3500만원)에 모두 7000만원을 빼갔다.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줬다고 말한 시점을 즈음해 석 달 동안 1억7500만원을 인출한 셈이다.

또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에게 대선자금 명목으로 2억원을 건넸다는 2012년엔 9억5400만원이 전도금으로 인출됐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도별로 나간 전도금 중 가장 큰 규모다. 검찰은 홍 의원뿐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경우를 배제하지 않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2013년 4월 4일 전후의 전도금 인출 내역도 눈여겨보고 있다. 그해 3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1500만원이 인출된 것을 비롯, 3월 한 달 동안에만 모두 7차례 걸쳐 5000만원이 인출됐다. 다음 달에도 8일 700만원을 비롯해 작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씩 8차례에 걸쳐 총 4700만원이 빠져나갔다.

검찰은 ‘전도금의 비밀’을 밝힐 핵심 인물로 한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주시하고 있다. 그는 2004년부터 경남기업과 관련 계열사의 재무 업무를 총괄했다. 성 전 회장과 한 전 부사장은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서 갈라섰다고 한다. 한 전 부사장은 용처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전도금을 성 전 회장 지시로 조성했다고 진술하고 인출 내역을 정리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성 전 회장 측은 전도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한 전 부사장이 중간에서 횡령했다고 주장한다. 성 전 회장 측 변호인은 “전도금은 한 전 부사장이 직접 해명해야 할 부분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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