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신승원이 뚱한 얼굴에 왈가닥스런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아하고 청초한 여주인공이 일반적인 고전발레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바로 드라마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여주인공인 카타리나다.
카타리나는 여동생 비앙카(박슬기)의 구혼자들이 세운 계략 때문에 호탕한 신사 페트루치오(이동훈)와 결혼하게 된다. 자매의 아버지가 카타리나가 결혼하기 전까지 비앙카를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카타리나는 처음엔 페트루치오를 물어뜯거나 발로 차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지만 점차 남편을 좋아하게 되면서 유순한 아내로 변한다. 그리고 청순하게만 보였던 비앙카는 사실상 내숭 덩어리였던 것이 드러난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국립예술단체 연습동 연습실. 29일부터 5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연습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국립발레단은 전날부터 전막 리허설을 실시하고 있다. 신승원-이동훈이 군무와 함께 전막을 맞춰보는 동안 옆방에서는 김지영-김현웅, 이은원-이재우 커플이 따로 이인무를 연습했다.
국립발레단이 올해 처음 선보이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드라마발레의 거장’ 존 크랑코(1927∼1973)가 1969년 안무한 것이다. 비극이 많은 발레 장르에서 완성도가 뛰어난 희극 발레로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국내에선 200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내한공연 외엔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크랑코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로미오와 줄리엣’(1962), ‘오네긴’(1965)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그의 유산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명문 발레단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지난해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취임한 강수진은 바로 이곳에서 주역으로 활약해 왔다. 크랑코가 안무했던 드라마 발레 3부작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바로 강 단장의 대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이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과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 등을 새롭게 선보이긴 했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워낙 강 단장과 깊은 연관이 있었던 작품이라 발레 팬들의 관심이 매우 높은 상태다. 강 단장은 1997년 이 작품에 처음 출연한 이후 지금까지 즐겨 추고 있다. 그는 “발레단의 리드 앤더슨 감독이 캐스팅 제안을 하기 전까지 내가 코미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면서 “이 작품을 하면서 내가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됐던 만큼 이번에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그 재미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도 이번에 코미디 발레의 정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남녀노소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발레의 대중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워낙 익숙한 작품이라 강 단장은 어떤 작품보다 더 많이 발레단의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 존 크랭코 재단에서 직접 트레이너들이 왔지만 강 단장이 직접 시범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은 “단장님이 직접 나서서 작품에 대한 조언을 주기 때문에 무용수로서 받아들이는 과정이 수월하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단장님이 자신의 해석이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주입하는 것은 아니고 무용수 개개인이 스스로 역할을 만들게끔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8년째 발레를 하면서 이번처럼 망가지는 역할은 처음인데, 처음엔 약간 어색했지만 지금은 무척 재밌다”면서 “카타리나의 경우 나를 포함해 3명의 발레리나가 모두 색깔이 다르면서도 평소 자기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국립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 리허설 현장] 강수진의 간판 레퍼토리… 한국에선 어떻게 만들까?
입력 2015-04-20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