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지부지’는 ‘어떤 일을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어가거나 넘기는 모양’을 뜻하는 말입니다.
‘휘지비지(諱之秘之)’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줄여서 ‘휘비’라고도 하지요. ‘남을 꺼려 우물쭈물 얼버무려 넘김’이란 말입니다. ‘휘’하고 ‘비’한다는 뜻인데 애지중지(愛之重之) 감지덕지(感之德之) 등과 모양이 비슷하지요? 그럼 諱자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선 ‘돌아가신 높은 어른의 생전 이름’을 말합니다. ‘순신(舜臣)’은 이 충무공의 휘이지요. 휘는 또한 ‘꺼리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입 밖에 내서 말하기를 꺼리다’와 같은 뜻입니다. 秘자는 비밀스럽게 하거나 숨는다는 뜻이고요.
‘흐지부지’는 ‘휘지비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 ‘히지부지’라는 말이 쓰인 걸로 보아(심훈의 소설 ‘상록수’) 태생을 짐작할 수 있지요. ‘휘’가 ‘히’로, ‘히’가 ‘흐’로, ‘비’가 ‘부’로 바뀌는 등 음운 변화를 거쳐 ‘흐지부지’가 된 것인데, 언어는 살아서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나라에 험한 일이 많습니다. 으스대며 스스로 앞장을 선 사람들이 많은 문제를 낳고서는 흐지부지 뭉개려고 합니다. 염치없는 태도라 하겠습니다.
서완식 교열팀장 suhws@kmib.co.kr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각종 의혹 흐지부지 뭉개면 안되죠
입력 2015-04-18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