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된 몇몇 권력 실세들의 말 바꾸기가 가관이다. 이런 인물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했으니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한탄만 나온다.
이완구 국무총리의 잇따른 해명성 말 바꾸기는 듣기 민망할 정도다. 일단 부인한 뒤 증거나 증언이 나오면 “기억 없다”로 한발 물러난 후 막다른 입장에 몰리면 마지못해 ‘소극적 인정’으로 결론 낸다. 이제 ‘해명=거짓말’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급기야 ‘목숨을 내놓겠다’는 과도한 울분에 이어 ‘충청도 말투 탓’이란 지역감정 조장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기존 해명과 달리 성 전 회장을 비서실장 시절 만난 적이 있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일부 언론에 접촉 사실을 짐작케 하는 기사가 게재되자 부랴부랴 만남을 인정한 것이다. 김 전 실장 역시 “착각했던 것 같다”며 어두운 기억력 탓으로 돌렸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성 전 회장에 대해 당초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지나가는 길에 잠시 본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단둘이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러니 ‘실세들은 한결같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의식구조를 지닌 모양’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오는 것 아닌가. 한두 번이 아닌 잦은 착오나 기억력의 한계는 거짓말의 다름 아니다. 정직은 책임감, 신뢰, 봉사정신 등과 함께 공직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란 서양 격언도 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물러난 것도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총리로서의 권위를 상실해 여권 내에서도 사퇴론이 제기된 이 총리의 변명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지 불편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청소년들이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구차한 말 뒤집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떠올리면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사설] 불신 자초하는 실세들의 잇단 말바꾸기
입력 2015-04-18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