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거르거나 기르는 주머니

입력 2015-04-18 02:13
보우만주머니와 사구체. 구글

옷 안팎에 자리 잡고 있는 주머니는 몸에 지녀야 할 필수품을 담는 요긴한 장치다. 발육상태가 좋아 덩치가 큰데도 불구하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등교하는 중학생을 보면 왠지 정겨운 느낌에 출근길이 가벼워진다. 신발주머니를 ‘신발가방’이라 잘 부르지 않는 것은 아마도 뚜껑이나 잠금장치가 없어서일 것이다. 과학에서 인용되는 ‘주머니’의 개념도 이와 비슷한 경우에 사용된다. 즉 외부 개방성을 지니며 무엇인가를 담는 중요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나 구조체에 이런 명칭을 붙인다.

동물세계에서도 몇몇 재미난 주머니를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유대류의 아기주머니는 이들의 종족 번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조체다. 캥거루와 코알라로 잘 알려진 유대류는 태반이 없거나 발달이 미약한 까닭에 짧은 임신기간을 지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새끼를 출산한다. 유대류의 미성숙 새끼 대부분은 어미의 복부에 있는 주머니에서 젖을 먹으며 성장한다. 어류 중에는 해마와 실고기가 주머니를 지니고 있다. 암컷이 수컷 배에 있는 주머니 속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새끼들은 수컷의 주머니 속을 들락거리며 자란다.

우리의 몸 속에는 ‘보우만주머니’라는 기관이 존재하는데, 모세혈관 덩어리인 사구체를 감싸고 있어 사구체주머니로도 불린다. 혈액이 사구체를 통과할 때 이를 감싸고 있는 보우만주머니와의 사이에서 여과압(혈액의 수압+삼투압)이 발생해 혈액 내 불순물을 포함하는 물이 주머니 안으로 여과된다. 이를 사구체여과액 또는 원뇨라 부르며, 이는 오줌을 형성하는 최초의 용액으로 신장에서 몇 가지 가공 과정을 거쳐 방광으로 모이게 된다. 이와 같이 보우만주머니는 우리 몸의 피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수분과 불순물을 거르는 중요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듯 무엇인가를 덮고 감싼다는 것은 단순한 형태적 특징이 아니라 그것을 보듬고 보호하여 온전한 기능을 유지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동물들의 주머니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 것들을 건강하게 기르고, 보우만주머니가 피를 맑게 유지하도록 불순물을 거르는 것은 개방성 있는 구조를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

노태호(KEI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