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들 승훈이의 트럼펫 연주를 들으며 하루의 피곤함을 씻는다. 내게는 보너스와도 같은 달콤한 시간이다. 처음 트럼펫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저 호기심이려니 했었는데, 뜻밖의 흥미와 재능을 보이며 꾸준히 음악을 공부하더니 지난해엔 음대에 진학했다.
승훈이는 발달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승훈이에게는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신발을 신고, 옷을 입고, 말을 하고, 글씨를 쓰는, 그 모든 것들이 엄청난 도전이었다. 처음 아이의 상태를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힘들고 더디지만 씩씩하게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아들을 보며 작지만 단단한 희망을 발견했다. 이제 승훈이는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여느 비장애인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나 또한 다른 부모들처럼 아들 뒤에서 조용하지만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부모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험한 세상을 홀로 헤쳐가야 할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프게 읽힌다. 이제 그 부모들의 어깨에 놓여 있는 무거운 짐을 우리 사회가 덜어내야 한다. 편견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더불어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과거와 비교하면 장애인 관련 공공정책들이나 국민적 인식 등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좀더 노력해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장애인을 지칭하는 명칭이 제각각인 점을 들 수 있다. 언론 등 공적인 영역에서조차 장애우, 장애자 등이 마구잡이로 사용되며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장애우, 장애자, 모두 잘못된 표현이며 ‘장애인’이 올바른 명칭이다. 또한 장애인과 대응해 정상인이라는 표현도 적절치 못하다. 장애는 정상, 비정상을 따지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정상인 대신 ‘비장애인’이라 칭해야 할 것이다. 마침 보건복지부에서도 ‘더불어 행복한 사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명칭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명칭 하나쯤 아무려면 어떠냐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합의된 명칭조차 없는 사회에서 과연 제대로 된 정책이나 인식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번 캠페인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명칭이 속히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아마도 기념식이 거행되고 전국적으로 이런저런 다양한 행사들이 치러질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돌아오는 흔한 기념일 중 하나가 아니라, 장애인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며 함께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 여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올해 7월부터는 주민센터, 보건소, 도서관 등 공공건물뿐 아니라 마트, 음식점, 유치원, 은행, 언론사 등 공중이용 시설에 대해서도 문턱을 없애고 점자 표기를 함으로써 장애인들이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실시될 예정이라 한다. 이 또한 장애인 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진일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명칭 하나부터 전문적인 제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는 것, 바로 장애인 정책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이상우 가수
[기고-이상우]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향해
입력 2015-04-18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