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서울광장 추모 시민 1만명·경찰 충돌

입력 2015-04-17 03:53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이 16일 저녁 추모 문화제가 열린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참가 인원을 3만여명, 경찰은 1만여명으로 추산했다.곽경근 기자

“다윤이 너무 예쁘죠. 저도 미치도록 보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서울광장 추모행사에서 실종자 다윤(당시 단원고 2학년)이의 아버지 허흥환(52)씨는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쏟아냈다. 그는 “국가가 사람을 버린다면 국가는 필요 없을 것”이라며 “시행령 똑바로 된 거 갖고 오고, 인양도 똑바른 인양을 하라”고 외쳤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추모의 자리에선 분열과 갈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무성의에 항의하며 경기도 안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추모식을 취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았지만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폐쇄하고 자리를 떴다. 대통령은 아무도 없는 분향소 등을 둘러보다 방파제 앞에서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뿌리 깊은 갈등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갈등의 광화문=서울광장에서 열린 ‘4·16 약속의 밤’ 추모행사에는 시민 1만여명이 참여했다. 집회를 마친 오후 9시51분 9000여명이 예정에 없이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이들은 청계천 장통교를 건너 종로2가 방면으로 나가려다 이를 막아서는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을 향해 참가자들의 욕설과 날계란이, 행진 대열을 향해 경찰의 캡사이신(최루액)이 날아들었다. 인근에선 보수단체들이 맞불 시위를 벌였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는 추모객이 끊이지 않았다. 굵은 비가 내려 젖은 광장에서 추모객들은 말없이 우산을 들고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중앙대 1학년 김상훈(20)씨는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억울하게 죽은 거잖나. (추모 분위기를) 미디어로만 접하다 직접 맞닥뜨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오후 3시 반쯤부터 광장 건너편에서 ‘세월호 선동세력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종문 어버이연합 경기안산지부장은 “우리도 진짜 (세월호를) 인양하고 싶다. 그러나 누구의 돈이냐. 국민 세금”이라고 소리쳤다. 뒤에서 수십명이 “불순세력 물러나라. 세월호 유가족 물러나라”며 함성을 질렀다. 횡단보도 앞에서 어버이연합의 집회를 지켜보던 전직 중학교 교사 민영희(56·여)씨는 혀를 끌끌 차며 “세상에 오늘 같은 날 그러시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취소된 추모식=안산 단원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세월호 참사 1년 4·16합동추모식은 유가족들의 거부로 취소됐다. 반면 일반인 희생자 추모 행사는 인천 연안부두 해양광장에서 유정복 인천시장,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대로 열렸다.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안산 추모식을 취소하며 “팽목항을 방문한 대통령의 담화내용 전문을 받아봤는데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온전한 선체 인양 약속을 하라”고 촉구했다. 유가족들의 입장 발표에 앞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오후 1시40분쯤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항의로 조문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외면한 팽목항=환영받지 못하긴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9시 팽목항을 지키던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박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일부는 경기도 안산으로, 일부는 사고 해역으로 나간다고 했다. 모두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간다”고 했지만 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자원봉사자 등은 ‘원치 않는 방문’에 대한 항의 차원이라고 했다.

설치된 뒤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었던 팽목항 분향소도 임시 폐쇄됐다.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분향소 문을 굳게 닫은 뒤 현수막을 내걸었다. 노란 바탕의 현수막에는 붉은 글씨로 ‘인양 갖고 장난치며 가족들 두 번 죽이는 정부는 각성하라!’고 적혔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 중 일부는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떠나고 2시간 정도 지나서 팽목항에 나타났다. 착잡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여기에서 오후에 추모식 행사를 여시는 분들 때문에 저는 먼저 돌아왔어요. 분향소는 내일 다시 열 거예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