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15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 11명을 대상으로 한 심야 압수수색을 통해 1차 자료 수집 작업을 마무리했다. 자금 전달 내역이 소상히 적힌 ‘비밀장부’ 같은 결정적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수사 실마리가 될 만한 각종 자료는 확보했다. 수사는 단서 조각을 모아 불법자금 수수자로 지목된 정치인 중 혐의 입증이 가능한 이들을 선별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지난 13일 구성된 수사팀은 이틀 만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 당일 오후 발부되자 바로 집행했다. 성 전 회장이 2013년 여야 정치인 20여명에게 후원금을 낸 내역이 저장된 컴퓨터도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스토리’가 될 수 있는 정황증거를 무조건 많이 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16일까지 단 한 명의 참고인에게도 진술조서를 받지 않았다. 증거 수집 및 분석 작업을 어느 정도 마친 뒤 측근 그룹을 불러 관련된 진술을 듣겠다는 복안이다. 수사팀이 현재까지 쥐고 있는 정보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성 전 회장은 기밀 보안을 극히 중시했다. 특정한 한 사람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비자금 조성 및 인출, 성 전 회장 일정관리, 수행 혹은 돈 심부름 등 역할이 철저히 구분됐다는 뜻이다. 성 전 회장이 정치권에 자금을 제공하는 전 과정을 아는 이는 사망한 성 전 회장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수사팀으로서는 ‘단선 구조’로 보이는 자금전달 과정을 단계별로 한 사람씩 쫓아가 자금의 종착지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압수수색 대상이 된 측근들은 모두 “검찰이 부르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충분히 말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는 성 전 회장이 정치인에게 돈을 주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성 전 회장이 3000만원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이완구 국무총리의 경우도 ‘2013년 4월 4일 (3000만원이 든) ‘비타500’ 박스를 선거사무실 테이블 위에 두고 나왔다’ ‘두 사람이 당일 독대했다’ 등의 증언은 있지만 이 총리가 돈을 받는 장면을 봤다는 이는 아직 없다. 수사팀이 이 총리 의혹을 입증하려면 경남기업 비자금에서 돈이 나와 이 총리 선거사무실까지 이동한 경위와 전달 당시 정황 등을 최대한 정교하게 맞춰야 한다.
2011년 6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1억원을 수수한 의혹이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는 중간에 전달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검찰은 15일 돈 심부름을 했다고 지목된 윤모(52) 전 경남기업 부사장 자택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그의 지인은 “배달사고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조만간 윤 전 부사장을 소환할 계획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제3의 목격자’를 찾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수사팀은 기존에 확보한 56자 금품 메모, 육성 파일, 32억원 비자금 인출 내역 등과 압수물을 종합 분석해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에 대한 구체적 수사 전략을 세울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성 전 회장의 육성 파일에서 직접적인 금품수수 언급이 없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수사 후순위로 밀릴 공산이 크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
불법자금, 경로 추적 → ‘종착지’ 찾아간다
입력 2015-04-17 0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