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 민심 이반 가속… 총리 경질 가능성 열어놔

입력 2015-04-17 03:35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유족들이 분향소를 폐쇄하고 떠나 유족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진도=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이완구 국무총리 거취 문제에 대해 처음 입장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경질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셈이다. 최종 결정을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당과 소통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국정최고수반으로서의 ‘역할론’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 일정을 바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긴급회동을 가졌다. 이 총리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집권여당에서조차 자진사퇴 요구가 제기되는 것을 잠재우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당내에서 친이(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부정적 목소리가 비박(비박근혜)계로 확산될 경우 청와대의 국정장악력이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엿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병기 실장을 통해 먼저 김 대표에게 연락해 당의 입장을 경청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현 시점에서 당청 관계에 불협화음이 나거나 갈등이 불거지는 모양새가 연출될 경우 국정 혼란이 가속화돼 상황 관리가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해석된다. 국정 2인자인 이 총리가 벼랑 끝에 내몰려 책임총리로서의 권위가 떨어진 상황에서 여당마저 분열될 경우 국정현안에 드라이브를 걸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당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가능한 것들은 수용하겠다는 열린 태도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당 핵심 관계자는 “믿을 곳은 당밖에 없으니 당이라도 좀 중심을 잡아 달라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이번 사태 해결에 대한 당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어떠한 조치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며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강한 해결 의지를 강조했다. 특단의 대책에는 이 총리의 경질 가능성까지 포함된 것으로 읽힌다. 당장 결정할 순 없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자신이 직접 내리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회담 결과에 최소한 ‘당과 상의해서’라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박 대통령은 결국 당 대표와의 독대라는 방식으로 당의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하루하루 상황이 바뀌니까 상황도 보고 여론도 보고 사건 추이도 지켜보면서 (대통령이) 생각을 정리해 오실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비주류 의원은 “긴급 상황이어서 이뤄진 회동”이라며 “이번 회동으로 권력의 추가 당으로 급격히 옮겨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진실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특별검사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야당까지 압박했다. 야당 지도부에게 ‘특검’의 공을 던진 셈이다. 청와대가 진실 규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면서 동시에 야당의 공세도 차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