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해임건의안’ 받자니 내분 무섭고 안 받자니 여론 무섭고

입력 2015-04-17 03:30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운데)가 1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을 마친 뒤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회동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유승민 원내대표, 오른쪽은 김학용 대표비서실장. 이병주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6일 이완구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 대표가 해임건의안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검토’라는 전제를 달았다. 당장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기보다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누리당은 “문 대표의 해임건의안 검토 발언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속내는 매우 복잡하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 이후 이 총리의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새정치연합이 순방 기간 동안에는 해임건의안을 추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문 대표의 해임건의안 검토 방침에 대해 새누리당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해임건의안 카드는 새누리당이 우려했던 시나리오다. 해임건의안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해임건의안을 부결시킬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부결시켰다가는 ‘부패정당’이라는 후폭풍에 당의 존폐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사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머리 아프다.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려면 현 재적의원 294명의 과반인 148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정당별 의석분포는 새누리당 157명, 새정치연합 130명(구속 수감 중인 김재윤 의원 포함), 정의당 5명, 무소속 2명이다. 김 의원을 제외한 야당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져도 134표에 불과해 독자적으로는 해임건의안 가결이 불가능하다. 새누리당의 반란표가 있어야 해임건의안이 통과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해임건의안이 부결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새누리당이 지게 될 것이 뻔하다. 새누리당에서 반란표가 적게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임건의안을 덜컥 받을 수도 없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이 총리 해임에 찬성표를 던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새누리당 내 친이(친이명박)계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친박(친박근혜)계 간 내부 분열도 걱정이다. 야당과 싸우기 전에 당내 분란으로 자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나 27일 귀국한다. 이 총리가 어떤 형식으로든 퇴진할 경우 국정 1인자와 국정 2인자 모두 ‘부재(不在)’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총리가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여당이 자기만 살려고 의혹이 입증되지 않은 총리를 밀어내려고 한다는 비판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총리의 거취와 관련해 아무것도 안 하자니 여론이 무섭고, 그렇다고 해임건의안이나 자진사퇴에 동조할 수도 없는 늪에 여권이 빠져든 것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장고에 들어갔다. 김무성 대표는 경기도 성남중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 앞서 이 총리 거취 문제와 관련해 “이 시점에 뭐라 얘기하기 참 어렵다”고 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