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이른 오후 영동고속도로 원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10여분 정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마을 한복판 기와집 앞이었다.
그가 명봉산 자락에서 잡초를 뜯어먹고 산다는 소리만 듣고 주소를 찍었는데 내비게이션은 '띠리리릭∼' 하고 신호음을 낸 뒤 더 이상 안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주소를 다시 확인했지만 맞았다.
당호(집 이름) '불편당(不便堂)'이라는 편액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이 남색 개량한복을 입고 화가들이 주로 쓰는 모자를 쿡 눌러쓴 고진하(62) 목사가 열린 대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흔한 것이야말로 귀한 것입니다
‘삐그덕∼’. 고목 대문의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6·25전쟁 직후에 지은 집의 대문이라니 고 목사와 동년배나 다름없어 보였다. 대문을 쑥 밀고 들어서니 흙냄새가 물씬 풍겼다. ‘ㄱ자 기와집’ 흙 마당엔 군데군데 돋아난 잡초가 파릇파릇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달게 삼켰다. 마당 하늘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은 구부정한 장대에 의지해 반듯하게 걸려 있다. 아니, 빨랫줄이 장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장대가 빨랫줄에 의지해 서있는 것 같았다.
올망졸망한 장독대 앞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물 펌프가 유수 같은 세월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중물을 넣고 손잡이를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물을 토해낼 것 같았지만 녹슨 손잡이는 지난 세월의 무게에 ‘삐걱’거리기만 했다.
“치악산 밑에 살다가 6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왔어요. 첨엔 세 들어 살다가 몇 년 전에 텃밭까지 다 샀어요. 한 826㎡(250평) 정도 됩니다. 낮엔 집을 고치고 잡초(雜草·산야초)를 뜯고 밤엔 공부하며 시도 짓고 책도 쓰면서 불편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고 목사는 비가 오니 안으로 들어가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자며 거실로 안내했다. 부엌과 너른 광을 터 만든 거실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고 목사의 동반자 권포근(55) 사모가 ‘차풀차’를 끓여 내밀었다. “아마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차일 겁니다. 개울가 모래밭에서 자라는 작은 풀이지요. 녹차에서 느낄 수 없는 구수함이 특징이랄까요.”
권 사모가 안방으로 건너가자 고 목사가 차풀차 자랑을 이었다. “자귀나무 잎사귀와 같아요. 낮에는 잎을 폈다가 밤엔 오므리죠. 지난해 9월 씨가 맺혔을 때 땄는데 맛이 기막히게 좋아요.”
고 목사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잡초비빔밥을 해먹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사실 저는 지난해 봄부터 늦가을까지 농로를 거의 매일같이 걸었습니다. 논과 밭두렁에 돋아난 잡초를 뜯어먹기 위해서죠. 아내와 저는 식재료비 0원의 풀을 뜯어먹으면서 그 강한 생명력과 뛰어난 약성(藥性)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잡초야말로 미래식량의 한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죠.”
고 목사는 지난해 5월 어느 주일 설교 준비를 하다가 깨달은 내용을 전했다. ‘흔한 것이야말로 귀하다’는 깨우침이었다. 누가복음 11장 11∼13절 중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는 구절에 꽂혔다고 했다. 바로 ‘성령’이라는 두 글자였다. “세상 사람들은 금은보화, 부동산, 자식의 출세 등 ‘흔치 않은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와 같은, 천박한 자본이 지배하는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치게 된 것이지요.”
고 목사는 성령은 무소 부재한 것으로 햇빛과 공기, 물처럼 흔한 것이라고 했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미소와 어머니의 사랑처럼 흔하다고 했다.
그는 내친김에 오늘날의 종교가 속된 자본주의에 빠져 세상과 결탁해 일반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현실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했다. “소중한 진리, 흔한 것만 구하고 살면 문제될 게 없지요. 예수님과 바울 등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부귀와 명예, 권력과 탐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요.”
고 목사는 차풀차를 다시 우려 찻잔에 부으며 다시 잡초 얘기를 했다. 흔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전환만이 전 지구적인 파국을 막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개망초 달맞이꽃 곰보배추 질경이 민들레 애기땅빈대 등을 열거하다가 이런 식물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로제트 식물입니다.” 잡초 얘기가 무르익자 안방에 있던 권 사모가 거실로 나와 이야기를 거들었다. “가을에 종자를 뿌리는 이 식물들은 제일 약한 것들이죠. 차디찬 겨울을 견뎌야만 이듬해 봄에 싹을 틔울 수 있어요. 키가 큰 놈들이 나오기 전에 먼저 올라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꽃과 열매를 다 피워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1년 동안 기다렸다가 봄이 오면 부활하는 거죠.”
고 목사는 로제트 식물뿐 아니라 모든 잡초들이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잡초가 원래 다른 식물보다 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약한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기보다 더 강한 식물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잡초는 예측 불가능한 난세를 좋아하는 식물이라는 말이 있죠. 그래요, 식물의 세계는 정말로 들여다볼수록 웅숭깊지 않습니까.”
잡초는 인생의 참스승입니다
고 목사는 ‘난세’는 어지러운 인간세상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하루 세끼 밥 굶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세상인심은 메말라 가는 등 모두들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과연 지금이 난세인가요? 잡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뎌냅니다. 잡초는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자살하지 않습니다.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굳세게 살아가는 질경이를 보세요. 다른 식물들이 발붙이지 못하는 길바닥을 서식지로 삼지 않습니까. 잎은 여리지만 그 속에 강한 실 줄기가 들어 있어 사람들 발길에도 금방 일어나며, 씨앗 젤리 모양의 물질이 있어서 물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며 달라붙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성질을 이용하여 씨앗을 퍼뜨리는 겁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고 목사는 밟히면 밟힐수록 옆으로 자라는 기막힌 지혜를 발휘하는 민들레의 속성도 이야기 했다. 암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각광받고 있는 애기땅빈대도 사람들의 통행이 붐비는 길 위에 납작 엎드려 짓밟히면서 생명을 영위한다고 했다.
“애기땅빈대는 꽃을 피워도 벌이나 나비의 눈에 띄지 못합니다. 개미와 파트너를 이루어 꽃가루받이를 해 씨앗을 퍼뜨리는 거죠. 이런 지혜로운 생존전략을 보면 잡초는 힘겹게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이 난세의 스승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 버거울 땐 잡초를 보세요.”
시골생활 십수 년에 고 목사 부부는 잡초비빔밥 전도사로 변신했다. 부부는 그동안 뜯어먹은 잡초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잡초라고 하면 쓸모없는 풀, 가치 없는 풀이라고 생각하지요. 약초 도감을 보고 확인해 본 결과 가치 없는 풀은 없습니다. 토끼풀은 두통과 지혈, 생인손, 감기에도 좋습니다. 쇠비름은 암, 관절염, 당뇨에도 약효가 있다고 합니다. 울타리 밑이나 논밭가에 돋아나는 환삼덩굴은 고혈압이나 위장 질환에 좋고 소변도 잘 나게 하는 효과가 있지요.”
권 사모는 올봄이 가기 전에,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산야를 누비며 채취한 잡초를 가지고 요리에 성공한 비빔밥과 주먹밥, 수육, 수제비, 샤부샤부 등의 잡초 레시피를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궁극적인 시인이다
최근 ‘시 읽어주는 예수’(비채)를 펴낸 고 목사는 “옥타비오 파스가 시인은 살아 있는 목소리의 거부(巨富)라고 표현했다”면서 “그분은 쌀처럼 작고 낮은 목소리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궁극적인 시인이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너 시간이 훌쩍 넘도록 잡초 얘기만하다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야속한 봄비는 일찍 핀 꽃잎을 떨어뜨리기 위해 속도를 늦추지 않았지만 잡초는 저마다 벙긋 웃으며 봄비를 반겼다. 작별을 앞두고 고 목사에게 ‘불편당’ 편액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불(不)’자 한 자 새기는 데 3개월이 걸렸다면서 언제 다 새길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잡초비빔밥을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시 한 편을 선물로 내밀었다.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돌미나리 쇠비름/ 산뽕잎 돌콩 고들빼기 익모초 취나물/ 토끼풀 우슬초 질경이 참비름 개똥쑥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아시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하늘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잡초비빔밥’ 전문)
고진하 목사=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감리교 신학대와 동대학원 졸업. 87년 ‘세계의 문학’ 통해 시인 등단, ‘거룩한 낭비’ 등 시집 6권과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쿵쿵’ 등 산문집을 냈다. 99년 번듯한 교회를 내놓고 낙향한 고 목사는 현재 원주 한살림교회에서 시골목회를 하고 있다.
원주=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이야기-고진하 목사·권포근 사모] 잡초, 맛의 깊이 어찌 아시겠어요… 영성, 은혜 크기 어찌 아시겠어요
입력 2015-04-18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