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급발진 의심 신고는 매년 100건이 넘고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인터넷에는 급발진 사고로 의심되는 블랙박스 영상들이 돌아다닌다. 영상을 보면 운전자 부주의로 치부해 버리기엔 미심쩍은 구석들이 많다.
대법원은 지난 2월 5년 전 경기도 포천시에서 발생한 오피러스 사망사고 피해자들이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사고 원인을 급발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의 판결은 사건마다 다르니 이번 사건을 급발진 사고 전체에 대한 판결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기술적 원인 규명이다. 무인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시대인데, 현재의 기술로는 급발진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이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급발진 원인으로는 엔진제어장치(ECU·Engine Control Units)의 이상이나 오류가 거론된다. ECU는 점화시기와 연료분사 등 차량의 핵심기능을 제어하는 전자장치인데, 이곳에 불량이나 오류가 생기면 급발진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일부 연구자들이 이런 주장을 계속해 왔다. 2009∼2010년 발생한 급발진 사고로 소송을 당했던 세계 1위 자동차업체 도요타는 지난해 초 미 법무부가 관련 수사를 종료하는 대가로 12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도요타 측은 “배상금 지급은 차량 결함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에 대한 신뢰 문제 등을 고려한 복합적인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도요타 급발진 재판 과정에서 ECU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제출되기는 했지만, 공인된 결과가 아니라는 게 도요타 측의 해명이었다. 도요타도 모르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급발진 원인을 규명하려는 검증작업이 여러 차례 진행됐다. 1998년 소비자보호원이, 1999년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가, 2012년 국토교통부가 급발진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모든 조사의 결론은 ‘자동차의 구조적인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역시 2011년 10개월간 도요타 급발진 현상을 조사했지만, ‘급발진 현상의 원인이 전자제어장치의 결함은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도 2011년 급발진 사고 원인을 조사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사도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국내외 자동차 업체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급발진 미스터리의 근거다.
현대·기아차의 입장도 비슷하다. 급발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급발진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나사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문제”라는 말을 되풀이해 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어적이고 수동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소비자들이 급발진 원인을 물어볼 곳은 현대·기아차 외에 달리 없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현대·기아차만이 급발진 문제를 해결할 기술과 돈을 가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전 세계 자동차회사 중 5위다. 점유율이 좀 떨어졌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도 60%가 넘는다. ‘선진국에서 못하니 우리도 하기 힘들다’고 말할 위치를 넘어섰다. 오히려 ‘다른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못하니, 우리가 한 번 제대로 밝혀내겠다’고 나서면 어떨까. 현대·기아차에 ‘급발진 원인 규명 TF’가 꾸려진다면 인터넷상에서 활동한다는 ‘100만 현대차 안티 대군’들의 마음도 많이 풀어질 듯하다.
남도영 산업부 차장 dynam@kmib.co.kr
[세상만사-남도영] 급발진 문제 대처법 없을까
입력 2015-04-17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