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 친구들은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대학 3학년부터 시작했으니 50년이 넘었다. 대화는 그때마다 달라졌다. 애인이 있나 없나를, 취직이 되었나 아닌가를, 대학원을 가나 안 가나를, 결혼에서 시댁 이야기, 아들을 낳았나 딸을 낳았나에서 남편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뭘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돈이 많나 아닌가를, 월세를 사나 집이 있나를 등 여러 대화가 세월 따라 달라졌다.
12명에서 한 명이 죽고 몇 명은 과부가 되었다. 그중에 누구 하나 바람난 적도 없고 치맛바람 날리는 애도 없고 이혼한 적도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 온 친구들이다. 그중에는 교수도, 총장도 있지만 우리 만남에서는 세 번을 계속 빠지는 친구는 없다. 아마도 두어 명 남을 때까지는 계속 갈 것 같다. 이 친구들 인생은 친구들이 더 잘 안다. 어느 친구의 인생 페이지의 작은 점 하나도 모르는 부분이 없다. “너 그때 그러지 않았니?” 하면 모두 동감한다. 서로 고치지 못할 흉도 잘 보고 작은 칭찬도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나이가 일흔을 넘었다.
요즘은 만나면 잘 싸운다. 젊은 시절에 잘 받아넘기는 흉을 못 참아낸다. 욕 면역성도 줄어들었나 보다. 때로는 하나하나 바라보면 측은하다. 긴 세월을 보며 살다가 친구가 내가 되고 내가 친구가 될 때가 있다. 일이 있어 두어 달 못 보다가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다. 그렇게 자주 보았으니 그들이 늙는 걸 남들보다 모른다. 부부 같다. 부부도 얼굴보다는 행동 보고 늙는 걸 아는 것 아닌가.
그러나 달라진 것이 분명 있다. 젊었을 때는 서로 먼저 이야기하려고 싸우며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요즘은 밥만 먹고 헤어진다. 어느 날 나는 그런 짐작을 하고 세상에 떠도는 웃기는 이야기를 했는데 피식 웃고 다시 조용해진다. 옷도 사고 떠들기도 하긴 하지만 힘이 빠져 있다. 언젠가 이 친구들을 서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헤어지는 날이 올 것인가. 너무 슬프다. 침묵을 버려라. 친구들이여. 침묵에서 솟아올라 수다로 가자. 나의 오랜 친구들이여!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수다에서 침묵으로
입력 2015-04-1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