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1) 어느 연약한 아이의 죽음 - 세네갈의 작은 시골 마을 카프린에서

입력 2015-04-18 02:31
세네갈에서 만난 아이들. 이렇게 웃음짓는 아이들 한편에선 굶주리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또 다른 ‘아다마’ 같은 아이도 있다.

“나의 무능함에 가슴이 미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불공평함을 원망하며 멈출 수 없는 눈물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2012년 7월의 어느 날, 세네갈 동쪽의 작은 시골 마을 카프린에서 코이카 소속 허성용 단원의 슬픈 탄식이 터져나왔다. 봉사하던 마을에서 위급 상황에 처한 한 아이를 보게 된 것이다. 아이 이름은 ‘아다마 바’. 다섯 살 난 아이는 기형적으로 발이 부어 있었고, 다리는 앙상했다. 엉치뼈 부근에 큰 혹이 있었고, 피부염이 심한 엉덩이를 보고서 허 단원은 아이를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어 현지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의 병원에서 뾰족한 수가 나올 리 만무했고, 전문가에게 물어봐도 이미 오래 방치되어 손쓰기 힘든 상태라는 절망적인 답변만 들었다. 오랫동안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아이는 힘겹게 숨만 쉴 뿐 날아드는 파리 한 마리조차 쫓지 못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정서적으로 불안해졌고, 대인기피증까지 깊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이 부모가 이 상황을 타개할 어떠한 능력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허 단원은 결코 아이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에 보낸 이유가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생애 처음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휴가 때 쓰려고 모아둔 100만 세파(약 250만원) 전액을 아이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긴박한 상황을 알리고, 주위에 관련 지식이 있는 이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우선 급한 대로 마사지와 발바닥 상처 치료, 비타민 시럽 공급, 근력 운동 보조와 정신건강 향상 등을 목표로 허 단원은 뛸 준비를 했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심은 통했다. 코이카 세네갈 사무소에서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또한 아이의 병명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분 척추증과 욕창이었다. 허 단원은 일단 구급차를 이용해 아이를 수도 다카르에 있는 세네갈에서 가장 큰 알버트로이어 아동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치료 이후 아이를 돌볼 가족의 관리에 대한 제반 사항까지 체크하고, 치료를 위한 각종 서류 등을 준비했으며 본인이 기부한 금액이 치료비보다 현저히 적었을 때를 대비해 부탁할 후원 요청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아다마에 대한 소식이 알려진 지 만 7일째, 아이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근처 일본인 간호사와 미국인 선교사, 간호사인 코이카 단원까지 모두 나서서 아이를 도와주었다. 겨우 위기를 넘긴 아이는 치료를 위해 수도 다카르로 가려 했지만 구급차의 이유 없는 늑장 출동에 더 힘들어했다. 피가 마르는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당도했고, 다시 한 번 기적적으로 생명의 줄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에 아이는 끝내 힘없이 세상과 작별했다.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만큼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아다마의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치료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기적을 바랐건만 아이는 끝내 밝은 미소 한번 짓지 못하고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끝없이 밀려오는 대답 없는 외침들에 괴로워하는 허 단원에게 아다마의 부모는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아니라 신이 하는 일이잖아요. 이제 이 아이를 신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다마를 위해 기도했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