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기?

입력 2015-04-18 02:01

지난 월요일에 누군가 교회에 전화를 해서 최의헌 목사가 모 대학교 주변에서 6주 성경공부를 가르치는데 이단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교육을 하지 않으니 누군가 나를 사칭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전화를 받자마자 몇 년 전 모 여대에서 제보를 받은 일이 떠올랐다. 내 이름으로 명함을 만들어 돌리고 학교 밖 어디에서 심리검사와 상담을 받게 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제보자가 메일로 보내준 명함 사진을 보니 내 모교의 로고와 주소에 ‘기독상담심리전문가, 교수 최의헌’이라고 모르는 연락처와 함께 적혀 있었다. 제보자에 따르면 몇몇이 “최의헌 교수님”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비슷한 사안이 또 벌어진 것이다. 가르치는 성경공부 내용을 전해들은 바로는 확실히 이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의 경우도 접근은 상담이지만 결국 이단이라고 추측하였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사칭인 줄 모르면 내가 이단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과 과거 사안을 접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는 왜 하필 나를 사칭하느냐는 점이다. 나는 그리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무슨 부각이 된다고 나를 사칭하는가 싶었다. 답은 금방 나왔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으니까 나를 사칭하는 것이다. 기독교 영역에서 그래도 이름 한 번 들었을 법하지만 사실 얼굴도 누구인지도 모르는 대상으로 내가 적격인 것이다.

둘째는 그냥 자기네 이름으로 포교를 하면 될 일이지 왜 괜한 사람을 사칭하면서까지 일을 벌이냐는 것이다. 나중에 알면 더 큰 문제가 될 일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심사로 하는 게 의아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 내 생각은 이러하다. 그쪽이 방법적으로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뭔가 안심을 하게 해놓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나를 사칭한 그 사람은 자신이 국민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은 나는 잘 몰라도 국민일보라는 명칭에 괜히 “아∼” 하면서 경계의 수위를 느슨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이단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점에 있어서 불법 다단계와 매우 흡사하다. 결과만 좋으면 거짓, 속임수, 사기, 그 모든 것이 용납되는 이러한 자세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이상향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인간성의 변질이 들어간다. 선과 악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간의 이중성을 목표와 방법에서 교묘하게 둘 다 만족시키는 셈이다. 다단계는 성공이 이상향으로 포장되는 반면 이단은 순수가 이상향으로 포장된다.

그런데 조심할 것이 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말할 때 남이 한 것은 비판하고 자기가 한 것은 용납하는 이중적인 시각을 수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단에 빠진 사람을 나오게 하는 이른바 ‘개종교육’의 경우 어떻게든 이단을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목표에 따라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단과 같은 수준이 되는 것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는 말씀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전도하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굳이 전도에서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목표의 성취를 앞당기기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수단 방법에 타협할 것인지 갈등하게 되는 일이 많이 있다. 제대로 걸으면 목표는 멀어지고 기다림도 길어지므로, 수단 방법에 있어서 누구나 다 유혹을 받기 쉽다. 하지만 좁은 문(마 7:13)으로 가야 한다.

최의헌 <연세로뎀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