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로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 빤한 걸 새롭게 해석해 그린다는 건 쉽지 않다.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칼데콧상을 여섯 차례나 수상한 저력의 미국 작가 제리 핑크니의 이 그림책은 그런 면에서 예사롭지 않다.
속도가 느려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는 진부한 교훈을 생동감 넘치는 수채화풍의 사실적인 동물 그림과 작가의 독창적 해석으로 재탄생시켰다. 하나, 둘, 셋.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앞 뒤 다리를 길게 뻗어 뛰기 시작하는 토끼의 초롱한 눈은 승리에 대한 확신에 차 있다. 뒤에서 엉금엉금 기어오는 거북이를 돌아보는 표정에는 짐짓 여유가 있다.
색다른 해석은 이들의 경주를 지켜보는 구경꾼 동물들에 있다. 이들도 주인공만큼이나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는데, 경주에 참여 못해도 모두가 동등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강도 훌쩍 건너뛰는 토끼의 기세에 개구리들이 놀라 자빠진다. 힘겨워하는 거북이 등에는 개구리가 올라 앉아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토끼는 낮잠을 자는 여유도 부리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북이는 언덕을 내려가다 넘어져 데굴데굴 아래로 구르고 파란 모자는 저만치 날아간다.
그래도 엉금엉금 한결 같이 간다. 거북이의 꾸준함에 놀란 듯 마지막 결승점을 앞두고 경주를 지켜보는 동물들의 표정엔 자못 호기심이 어려 있다. 승리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는 대로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의 상징 거북이다. 마지막 장면은 작가의 철학이 담겼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거북이를 즐겁게 축하해주는 토끼의 모습에서 어린이 독자들은 ‘속도가 느려도 꾸준히 달리면 경주에서 이긴다’는 낯익은 교훈과 함께 ‘이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는 작가의 새로운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익숙할 법한 이야기에 새로운 감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책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어린이 책-토끼와 거북이] 어머, 개구리가 힘겨운 거북이 응원하네요
입력 2015-04-17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