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아빠 왔다, 잘 있니? 아빠는 안 울어”… 사고 해역 찾은 유가족들

입력 2015-04-16 02:38 수정 2015-04-16 09:42
세월호 희생자 가족 199명이 15일 전남 진도군 사고 해역에서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세월’이라고 적힌 노란 부표가 세월호 침몰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진도=김지훈 기자

‘휴∼’ 깊고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단원고 2학년 2반 서우양의 아버지 조혁문(44)씨였다. 15일 오전 9시 진도군 관매도 인근 ‘그 바다’로 가는 배에 오르기 전에 내뱉은 감정의 조각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이미 배에 오른 뒤였다. “다른 가족들이 있잖아. 빨리 가슴에 묻어야 하는데…그래야 다른 가족도 덜 슬퍼할 텐데.” 행여 들킬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깊은 한숨을 한 번 더 내뱉고서야 그는 배 쪽으로 걸어갔다.

사고해역으로 떠난 ‘한림페리 5호’에는 세월호 유가족 199명이 탑승했다. 2학년 1·2·3·8·9반 학생들 가족, 일반인 희생자 가족, 생존학생 가족 등이 배에 올랐다. 운무가 짙게 깔렸지만 날씨는 맑았다. 기온 9.2도, 풍속 초당 2m, 파도 높이 0.5m. 아이들이 잠든 바다는 잔잔했다. 하지만 남은 가족의 마음속 바다는 무섭게 출렁였다.

선실의 유가족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눈을 감고 있거나 고개를 푹 숙였다. 휴대폰에 저장한 사진을 보고 또 봤다. 단원고 2학년 8반 정수군의 아버지 최모씨는 아들에게 줄 국화꽃을 만지고 있었다. 둘째 아들은 형의 영정사진을 품에 꼭 안았다. 최씨는 “지금이 가장 힘든 때”라며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슬픔도 그렇게 꾹 눌러 담았다.

단원고 2학년 3반 윤민양 아버지 최성용(54)씨는 배 뒤쪽 갑판에 서서 먼 바다를 바라봤다. 큰딸이 동생 주라며 건넨 노란 국화 꽃다발이 손에 들려 있었다. “바다가 원망스러워요.” 최씨는 딸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려 부단히 애썼어요. 내가 세월호 유가족인지 모르는 곳에 가고 싶어서 직장도 옮겼어요. 그런데 한 달 만에 그만뒀어요. 일이 손에 잡히질 않더라고요. 유가족으로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건줄 몰랐어요.”

1시간40분가량을 달려 사고해역에 도착하자 유가족은 모두 갑판으로 나왔다. 바다에는 ‘세월’이라는 글자가 적힌 노란색 부표 2개가 떠 있다. 스피커에서 실종자 이름이 한 명씩 흘러나왔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막고 있던 댐이 무너지듯 봇물이 됐다. 시끄럽던 엔진 소리는 묻혀버렸다. 누군가 외쳤다. “아빠 왔다. 잘 있니? 아빠는 안 울어.”

꽃, 편지, 종이배 등이 바다에 안겼다.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양의 어머니 임선미(51)씨는 빨간 주머니를 힘껏 던졌다. 빨간색은 혜선이가 좋아하는 색이라고 했다. 주머니 안에 가족이 쓴 편지와 임씨가 평소 아끼던 말씀카드를 넣었다. 끝내 쓰지 않겠다고 버텼던 박양 아버지의 쪽지도 들어 있었다. ‘혜선아, 보고 싶다.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임씨는 14일이 생일이었다. 지난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던 딸은 이제 세상에 없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흐느낌은 커져만 갔다.

실종자 허다윤양의 언니 서윤(21)씨는 부표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조금만 더 뻗으면 동생에게 닿을 것 같았다. 동생이 좋아하던 사탕을 바다에 던졌다. 노란 국화와 편지를 동생에게 부쳤다. ‘어두운 곳에 오래 있게 해서 미안해.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해서 빨리 나올 수 있게 해줄게…미안하고 많이 사랑한다.’

헌화식은 40분가량 계속됐다. 배가 부표를 천천히 선회하자 외침은 절규가 됐다. “다윤아, 많이 사랑해. 다음 생에도 동생으로 태어나줘.” 허씨가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었지만 바다는 침묵했다.

유가족들은 한동안 갑판 위에 머물렀다. 난간에 몸을 의지한 채 바다를 바라보거나 그대로 주저앉았다. 바다로 뛰어들려 한 유가족도 있었다. 근처에 있던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재빨리 막았다. 유 집행위원장은 “1년이 지나도 진상조사나 인양 등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추모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라며 “떠나간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진상조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도=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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